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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점> 동덕여자대학교 4학년 동양화과 정재희 인터뷰2018 대한민국 미래환경예술 공모대전 최우수대상 국회의장상 수상
  • 박희정 기자
  • 승인 2018.11.30 10:42
  • 호수 111

서울은 답답하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곤 곧잘 서울 밖으로 훌쩍 떠나려고들 합니다.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그렇게 서울을 피해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오면, 금방 도착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이 작품의 배경지인 천수만입니다. (중략) 중간 철새도래지로서, 쉼표의 역할을 충분히 해온 천수만. 제게도 좋은 쉼표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물고기가 숨 쉴 수 없는 바다가 되어버림이 반복된다면, 이곳을 찾는 동물 손님들이 다음에 또 찾아올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삭막한 온점으로 남아버리지는 않을까요.

- 작품 설명 中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며 한때 국내에서 가장 큰 철새도래지였던 곳, 천수만의 지금은 어떨까?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태안반도 남단에 있는 이곳은 철새들은 물론 사람들에게도 답답한 일상의 쉼표가 돼주는 곳이다. 하지만 간척사업과 기후변화는 천수만의 물고기들에게 혹독한 환경이 됐고, 이대로 계속된다면 철새들의 방문은 뜸해질 것이다. 올해 대한민국 미래환경예술 공모대전 최우수대상인 국회의장상을 수상한 동덕여대 정재희 학생은 천수만이 도달할 곳이 문장의 마침표인 온점이 아니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쉼표로 남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작품에 담았다. 정재희 학생을 만나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2018 대한민국 미래환경예술 공모대전의 소재로 천수만을 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살고 있는 서울로부터 가깝기도 하면서도, 천수만은 잘 알려진 곳이기에, 보시게 될 사람들에게 익숙한 소재로서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천수만을 떠올리면 역간척, 방조제, 천수만낚시공원, 철새도래지, 세계철새기행전 등 많은 수식어가 함께 합니다. 더불어 작년은 태안 기름유출사고가 일어난 지 딱 10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올해는 과연 사정이 얼마나 달라졌고,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그곳은 얼마나 남아있을까요. 태안반도 안의 천수만, 가까울수록 당연시돼버리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건네기에 적합한 소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표현에 있어서 천수만의 무엇에 특별히 주목했나요?

근래 SNS에 올라오는 유행 중 하나가 ‘핑크뮬리’라 들었습니다. 그 알록달록한 것에 비하면 천수만은 아마 볼품없어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천수만을 직접 다녀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광활했고, 늦가을 날씨가 쌀쌀해질 무렵 황갈색으로 물들어버린 넓은 농경지에 드넓게 펼쳐진 천수만과 작은 부남호, 그 위에 죽도, 방조제 다리 위를 건너며 바라본 넓은 바다까지 쉽게 사진 한 장 찍어 올리기엔 미처 담지 못할 것들이 더 많았습니다.

제가 본 서로 다른 새들도 손가락이 모자라도록 많았습니다. 

 

실사와 다른 검정색의 천수만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먹빛은 참 칠흑 같습니다. 모든 물감을 섞어버리면 검정이 돼버리듯, 인간이 이를 곳도 결국 그 체념이라던 박민규의 소설집이 생각납니다. 서울에서 벗어나던 그 짜증 섞인 감정, 혹은 서울의 빌딩숲의 답답함, 대인관계, 학업고민, 진로 그림, 그림을 망쳤을 때의 그 기분까지도, 다 섞어버린 것은 검정이었습니다.

또 제가 작업하는 인물화 속 그들의 눈동자도 참 칠흑 같은 검정이었습니다. 참숯처럼 검은 눈동자가 거기 있었습니다. 눈을 뜨고도 감은 것이나 다름없던 그믐밤의 길들도, 나를 마주하던 이들의 눈빛에도, 검정은 거기 있었습니다.

그것은 캄캄하고, 끝없이 깊고, 풍부합니다. 화려한 색채들 사이에서 제가 짚은 것은 먹이었습니다. 인간이 이를 곳도 결국 이런 감정이겠지요.

천수만을 실제로 방문하신다면, 천수만은 요새 SNS에서 인기 있을 법한 곳은 아닐 겁니다. 단풍이 울긋불긋하거나, 억새처럼 예쁜 풀 가지가 속삭이거나 혹은 ‘핑크뮬리’ 같은 외래종이 남발하는 곳도 아닙니다. 풀색과 물색 그대로가 반겨주고, 그 안에 수많은 새들이 왔다 갔다 하는 넓은 태안국립공원 중 한 부분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그 담백한 색을 표현하고자 순수한 먹 하나만의 색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마치 우리가 흑백사진 속 장미 한 송이만 바라보더라도, 정열적인 붉은 색을떠올리듯, 모든 것은 보는 이에게 달려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먹빛은 모든 색을 섞어버린 체념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작품 제목처럼, 온점으로 남아버린다면, 먹빛풍경보다 더 슬픈 색으로 물들 것만 같으니까요.

 

한 가지 색으로 천수만을 표현하는 데는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아요. 작업과정에서 가장 세심하게 공을 들인 부분은 무엇인가요?

미묘한 색감의 변화에 가장 공들였습니다. 먹 하나만을 가지고 작업을 하면서, 하늘의 미묘한 구름과 노을 녘의 물든 하늘의 색이라든가, 또 황금빛 속삭임이 들리는 벌판이나, 반짝이는 물이라든가 모든 것을 그리려고 하니 그 풍부함을 다 담아내기 위해선 아주 미묘한 먹의 빛까지도 조절해야 했기에 그 점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그림을 실견하신다면 하늘의 부분 부분이라든가, 나뭇가지의 변화라든가, 비친 물의 표면이라든가, 제 손길이 참 수없이 다녀갔구나 하실 것입니다.

 

이번 천수만 작업이 본인에게 갖는 의미는?

가장 욕심 없게 그리려 노력했던 것같습니다. 현재 11월 말, 드디어 졸업 전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참 욕심 많고, 이것저것 많이 해보려 아등바등했던 대학 학부였습니다. 그 마침표를 찍기 위해 화려한 채색도 많이 해보았고, 대만에서 강한 색채감이 들어간 그림도 많이 그렸습니다. 정작 제가 수묵만으로 그려본 것은 입학하던 첫 해 빼고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순수한 본질이 먹이라면, 저는 이제야 겨우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가장 욕심없고, 가장 화려하지 않으며, 가장 기교 없이 그리려 노력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졸업작품을 하면서 같이 진행했던 작품이었지만, 어쩌면 졸업작품보다 더 저를 찾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대한민국 미래환경예술 공모대전의 주요작품을 전시한 『환경에 예술을 잇다』 인사동 갤러리에서도 작품 <온점>은 유일한 수묵화로서 많은 관람객으로부터 주목을 받았습니다. 강렬하진 않지만 은은한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수묵의 매력 때문이 아닐까 하는 데, 이에 대해 전하고 싶은 바가 있다면?

감사합니다. 유일한 수묵화는 큰 장점이자 큰 단점으로 작용할까 겁났습니다. 화려한 그림들 가운데 먹빛이 되레 검은 빛이라 칙칙해보이지는 않을까, 색채감이 뛰어난 작품들 사이에서 초라해보이지나 않을까 작품을 완성할 무렵 제출할 생각을 하니 몇날 며칠을 걱정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분들께서 주목해주심에 감사하다는 말 외에는 어찌 감사함을 전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참 역설적입니다. 종이, 집, 밥 – 서구의 것들은 잘도 부르면서 왜 우리의 것들은 한지, 한옥, 한식으로 타자화 해 부르는 것일까요. 먹빛의 그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은 일본화, 중국은 국화, 북한은 조선화, 각자 저 마다의 제 나라의 그림이라 말하는데, 우리는 우리의 그림을 잘 모릅니다. 수묵화가 단 한 작품이었다는 것도 어쩌면 저만을 주목해주실 좋은 기회일지도 모르지만, 넓게 생각하면 저 말고는 아무도 수묵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요.

어렵게 생각하시지 마시고, 즐겁게 생각해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취미 클래스로 수채화 클래스는 참 많은데 말이에요.

 

앞으로도 수묵과 자연환경을 주제로 한 작업을 계속해나갈 생각이신가요? 작업의 방향은?

현재 공필인물화로 졸업작품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제 주변의 인물들을 오래 사유하는 것을 좋아해 그들을 담아내는 작업을 합니다. 음, 마치 ‘먹으로 조금 더 오래 써내려간 짝사랑의 연서’같은 것이 제 인물작품들입니다.

실제로 이번 졸업도록에도 그렇게 쓰였고요.

수묵으로 인물을 표현하는 것도 참 좋습니다. 공필이 가지는 고운 붓질과 채색 말고도, 그 붓이 다녀간 갈필이나 획들이 보이는 것은 그것대로 참 좋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공필로 섬세하게 잎맥하나, 꽃의 수술 하나까지 그리는 공필화조 역시 참 아름답습니다.

물론 저의 현재 작업방향은 제 주변의 인물을 오랜 시간 사유하며 그리는 그림– 공필을 진행하고 있지만, 그 사이사이 제 주변에 있는 인물 외에도 제가 만난 꽃, 제가 만난 풍경들을 담아가는 일들도 많겠지요. 아직 저는 25살밖에 되지 않아서 많은 것을 그릴 수 있는 나이이기에 이 특혜를 조금 더 누려보려고 합니다.

 

먹빛으로 담담하게 담아낸 천수만의 풍경에 이토록 많은 사유가 담겨있는지…. <온점>은 풀숲들 사이로 홀로 솟은 나무, 유유히 군무를 펼치는 철새들,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는 작은 물새들의 하루를 고스란히 전한다. 언제나 소리 없이 분주한 그곳, 정작 천수만의 진짜 주인들은 영문도 모르는 사이, 이미 많은 변화가 그곳을 할퀴고 지나갔다. 자연이 주는 거대한 행복은 잊은 채, 자연에 혹독한 상처를 남기고서야 뒤늦은 후회를 하는 사람들이 이제야 천수만의 본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고 있다. 정재희 학생이 천수만을 먹빛으로 그려냈듯이, 자연은 보는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에 의해 다양한 색으로 온다. 혹여나 그 모습을 잃기 전에, 그의 제안대로 천수만을 한 번 실견해보시는 것은 어떨까?

박희정 기자  doban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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