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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빼앗아 간 한국팜유농장최대 팜유생산지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지는 파괴적 행태
  • 박희정 기자
  • 승인 2019.03.28 09:23
  • 호수 115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자그마한 땅에 카사바, 코코넛, 양배추, 쌀, 천연고무 등 여러 작물을 심으며 많은 양은 아니지만 가족이 먹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일하며 나눌 수 있는 풍족한 삶이 있는 곳이었다. 숲과 강가에는 아이들이 뛰놀 수 있고 빨래를 하거나 목욕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먼 나라의 사람들이 찾아와서는 보상금이라며 얼마를 쥐어주고는 마음대로 숲을 파괴하고 거대한 단일 작물 농장으로 바꿔 놨다. 마을 사람들은 이 처참하고 낯선 광경 앞에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빼앗아간 팜유산업

숲을 밀어버린 자리를 가득 채운 것은 기름야자나무였다. 야자나무 단일종은 한 시간에 축구경기장 300개 크기로 확대됐다. 더 이상 살 곳을 잃은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쫓겨 가다시피 했다. 더러는 팜유농장을 운영하는 회사가 제공하는 일자리를 얻어 생활을 영위하기도 했다. 얼마간의 수입도 주어지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힘겹고 고되다. 팜유회사에서 요구하는 수확량을 채우지 못하면 일당을 다 받지 못하고, 그 때문에 집안의 어린 아이를 데려와 보조로 일을 시키기도 한다.

물론 그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따로 없거나 매우 적은 임금이 주어진다. 이러한 일이 세계 최대 팜유 생산국인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인도네시아에 조성된 팜유농장은 2016년 기준 1100만 ha이다. 한국의 전체 면적보다도 더 큰 땅이 팜유 산업에 쓰이고 있는 것이다. 팜유농장으로 지역민들의 삶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인도네시아 중부 칼리만탄 세루얀 지역 셈블루 마을의 한 주민은 팜유농장과 공장이 생긴 뒤로, 물고기를 잡기 위해 설치한 어망에 물고기는 하나도 없고, 팜유회사의 식물성 폐기물만 걸려올 뿐이라고 전한다(팜유농장의 현실을 파헤친 보고서 ‘빼앗긴 숲에도 봄은 오는가’ 중).

주로 여성들의 몫인 제초제를 뿌리는 일을 할 때는 안전장비도 없고 여성들은 제초제의 유해성에 대해서 충분한 교육을 받지도 못한다. 팜유는 물을 많이 먹는 작물이어서 대규모 농장 운영으로 지역의 물은 마르고 강수량도 일정치 않아졌다. 가뭄이 한창일 때는 업체에서 주는 물로 생활해야 한다. 숲이 없어진 땅에 불어오는 비는 토양을 쓸어버리고 물난리에도 더 취약해졌다. 개발된 땅이 탄소를 머금고 있던 이탄습지라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일반 산림의 18~28배의 탄소를 저장하는 이탄습지의 개발은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 배출로 이어진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이탄지 보유국으로 60조 톤에 달하는 양의 탄소를 이탄지에 저장하고 있는 곳이다.

2000년대 들어 국내외 투자자의 팜유 농장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고 있는 인도네시아에서 이렇게 얻어진 팜유는 세계각지로 수출된다. 미국, 일본, 유럽 등이 수출지이며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주민들의 삶을, 그들이 그동안 누려왔던 풍부한 문화유산을 빼앗아버리고 얻어낸 팜유는 먹거나 얼굴에 바르거나 아니면 바이오디젤 차량의 운전에 쓰인다.

 

우리는 팜유를 모른다고 할 수 없다

우리가 팜유산업을 모른 척 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먹는 라면과 같은 면류, 초콜릿, 과자 등의 식품, 화장품, 심지어 국제사회에서 늘고 있는 바이오에너지의 원료도 이 팜유에서 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소비재의 거의 절반에 팜유가 들어간다고 하니, 이것을 알게 된 이상 우리는 파괴적인 팜유농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악명 높은 팜유농장을 운영하는 한국기업이 있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계 기업은 총 5곳으로 2008년 삼성물산이 팜유농장을 인수해 운영하기 시작한 이후로, LG상사, 포스코대우, 대상, 코린토가 팜유산업에 진출해 있다. 문제는 팜유 운영과 생산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 기업들은 주민들과 충분한 협의 없이 사업을 강행하며 토지를 무단으로 점거해 사용하거나 토지 정리를 위해 방화했다는 의혹이있다. 이로 인한 토지 분쟁, 주변 대기오염 및 수질오염 문제가 심각하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생물들이 위협받게 됐고 생존 반경이 좁아지면서 기존에 없었던 주민들과 오랑우탄 사이의 갈등도 생기고 있다.

플라즈마(Plasma)라고 하는 지역주민을 위한 공공 플랜테이션 제도가 있지만, 많은 기업에서 이를 따르지 않거나 지역민들의 업무를 힘들게 해 결국 지역을 떠나게 하는 등 지역 사회를 파괴하고 노동권을 침해하는 문제도 심각하다. 낮은 임금은 물론 부당한 공제, 여성에 대한 임금차별도 일어나고 있다.

보고서 ‘빼앗긴 숲에도 봄은 오는가’에 의하면, 팜유기업은 현지인들을 범죄화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이권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팜유농장에 반대하는 현지인들이 저항의 표시로 야자나무과일을 가져가자 그들을 절도죄로 고소해 가두는 식이다. 적법하지 않은 일은 계속해서 부당한 일들을 만들어낸다. 복잡하게 얽힌 이 문제를 법의 테두리에서만 볼 것이 아닌 것이 법망을 잘 알고 활용하는 기업과 현지 정부와의 부패가 겹치며 법이라는 이름으로 악행이 저질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한 현지인은 관습적 토지는 인도네시아 헌법에 명시돼 있는 것으로 팜유기업들은 헌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들의 사업은 현재도 계속 운영되고 있다.

 

팜유, 파괴적 산업이라는 오명 벗으려면

그래도 다행인 것은 팜유농장의 부조리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고 있고, 많은 글로벌 기업이 해당기업들을 공급망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적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최근 환경에 악영향을 주는 팜유농장의 현실을 직시하며 유럽연합은 팜유 사용을 제한하는 법안을 내놨다. 팜유를 유해한연료로 지정해 재생에너지의 범주에 넣지 않기로 한 것이다. 세계 최대의 팜유 생산국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이에 반발하고 있다. 팜유는 헥타르당 생산량이 미국산 콩기름의 8배에 달하지만 유럽연합은 정치적인 이유로 콩기름은 ‘저위험’으로 분류하고 있다며,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EU 전투기 구매를 백지화하고 인도네시아도 EU제품의 구매를 보이콧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 정부는 어떨까? 한국 정부는 해외에서 농림산물을 개발하기 위한 자금을 진출 기업에 융자해주고 있다. 융자지원 심의과정에서 환경파괴나 인권침해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서 따져볼지는 의문이다. 그러한 일들이 현지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그들 기업에게는 정부 보조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 팜유가 들어있는 음식을 먹고 화장품을 바르면서 살아간다. 그 원료는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팜유는 마을의 모든 것을 빼앗고 있다. 현지인들은 당초 거대한 팜유농장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이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곳이 팜유생산에 적합하다는 것이 그들이 누렸던 모든 것을 빼앗겨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그들의 땅은 그들의 삶을 위한 것이지 팜유를 위한 것이 아니다.

물론 팜유 자체가 파괴적인 산업은 아니다. 팜유는 얼마든지 지속가능하게, 책임감 있게 생산될 수 있다. 모두에게 지속가능하지 않는 지금의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환경과 인권을 보장하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팜유를 다량으로 사들이는 기업들이 팜유 생산 과정에 대한 책임을 질때에만 팜유 생산으로 인한 산림파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파괴한 산림만큼 숲을 복원하는 것도 팜유기업이 할 수 있는 책임의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는 팜유 생산에 제동을 걸기 위해 매일같이 성분을 확인하며 팜유가 들어 있지 않은 제품을 골라서 소비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도 간단치 않은 것이 유통과정의 투명성과 원산지 표시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랫동안 고착된 팜유농장 문제에 대해서 고찰해보고 그 논의에 참여하는 한 걸음이 더 큰 해결의 파장을 낳을지도 모르겠다.

박희정 기자  doban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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