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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자연의 기막힌 조화- 보고 듣고 거닐며 한양도성의 옛 정취에 취하다북악코스 편
  • 박희정 기자
  • 승인 2019.06.10 09:35
  • 호수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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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코스를 시작하는 창의문, 성석 좌우에 연꽃무늬의 빗물받이가 보인다

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명산의 가치는 오히려 그곳 시민들에게 종종 평가 절하된다. 한국에서 그 대표적인 곳은 서울이 아닐까. 서울 시내를 한눈에 조망하고 아름다운 산세를 감상할 수 있는 서울 성곽길은 서울시민들보다 오히려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더 많다. 성곽길을 휘감아 도는 북악산(342m)은 옛 서울의 주산으로 내사산 중 가장 높아 탁 트인 전망이 일품이다. 그 산세는 ‘반쯤 핀 모란꽃’에 비유될 만큼 아름답다.

가장 험준한(?) 북악코스, 힘든 만큼 누릴 수 있다

한양도성 도보 관광코스는 크게 4코스로 이뤄진다. 북악(백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 코스가 그것. 그 가운데 1코스가 북악산인데 이유는 한양도성이 이 북악산을 기점으로 축조됐기 때문이다. 북악코스는 창의문에서 북악산을 넘어 혜화문에 이르는 구간으로, 4개 코스 중 가장 경사가 가파르고 장시간(3시 반~4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그만한 보람은 있다. 서울 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고, 위치에 따라 다양한 산수와 절경들, 잘 가꿔놓은 소나무 군락과 공원을 한꺼번에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북악코스의 장점을 하나 더하자면, 다른 도보코스에 대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북악성곽길 걷기에 성공했다면 나머지 구간은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할 수 있다. 그렇다고 북악코스가 등산과 같이 아주 힘든 것은 아니니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5월 4일, 연휴를 맞아 7~8명의 사람들이 해설사와의 동반을 위해 창의문에 집결했다. 이날은 봄기운을 채 느끼기도 전에 찾아온 때 이른 더위에 꽃가루와 미세먼지까지 합세해서 걷기에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도시와 자연의 기막힌 조화를 온몸으로 담기에 충분한 북악의 매력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물론 시야를 가리는 뿌연 물질과 가빠지는 숨과 함께 목을 메이게 하는 꽃가루가 없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다행히 더운 날씨에도 선선한 바람이 불어 발걸음을 가볍게 해줬다.

 

정방형 돌로 정교하게 다듬어 쌓아올린 순조 때의 성곽

한양도성의 역사가 숨 쉬는 곳

최은심 해설사의 한양도성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으로 북악코스의 첫 발을 뗐다. 한양도성을 보여주는 사진을 한 번쯤 본 사람이라면 도성의 울퉁불퉁한 곡선을 기억할 것이다. 해설사는 “성곽을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고 자연적인 선을 따라 만들다보니 성곽이 구불구불하게 도성을 감싸고 있다”고 전했다.

성곽의 축조는 태조 5년(1396) 때의 일로서, 전체 구간 5만 9500척을 600척씩 97구간으로 나눠 전국에서 12만 여명을 동원해 축조한 것이다. 농번기를 피해서 농한기인 1~2월 49일 만에 전체적인 구간을 만들었고, 이어 6~9월 여름철에 다시 49일 간을 공들여 완성했다. 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 능선을 따라서 평지는 흙으로, 산지는 돌로 축성했으며, 지금의 성곽과 같이 전체가 돌로 된 성곽은 세종 때 비로소 만들어진 것이다. 적으로부터 성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한양성곽은 임진왜란 때 일부가 부서지고 이후 부분적인 개보수를 했으나 현재 남아있는 성곽은 대체로 태조, 세종, 숙종, 순조 시대의 것이다.

각 구간은 천자문 순서에 따라 이름 붙인 뒤 군현별로 할당했고, 성을 쌓을 때는 일부 성석에 공사에 관한 기록을남겼는데, 태조·세종 때에는 구간명·담당 군현명을 새겼으며, 숙종 이후에는 감독관·책임기술자·날짜 등을 명기해 책임 소재를 밝혔다. 실제 성곽의 군데군데서 사람의 이름이 새겨진 각자를 확인할 수 있다.

성곽에는 동서남북으로 4개의 큰 문(사대문)을 만들고 그 사이에 4개의 작은 문(사소문)을 뒀는데, 유교의 덕목인 인의예지를 동서남북 8개 성문의 이름에 담았다. 동쪽 흥인지문, 서쪽 돈의문, 남쪽 숭례문, 북쪽 숙정문의 사대문과 북동쪽 혜화문, 남동쪽 광희문, 남서쪽 소의문, 북서쪽 창의문의 사소문을 만들어 성안과 밖을 연결했다.

북악코스의 시작인 창의문은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의 북소문으로 ‘옳은 것을 드러나게 하다’는 뜻이 있다. 서울의 사소문 중 유일하게 축조된 영조시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수백 년간 사람의 발길에 길들여진 박석이 윤기를 발하고 있는 모습이 놀랍다.

둥근 아치형의 돌로 된 문 -이를 홍예문이라고 한다- 위에 세워진 성루는 영조 때 다시 만들어 지금까지 보전돼오는 것인데, 다른 곳의 문을 복원할 때 이를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창의문이 다른 성문과 다른 것은 상단 좌우에 연꽃무늬 모양으로 돌출된 부분이다. 빗물받이가 그 용도이며, 다른 성문들은 네모반듯한 각진 형태로 돼 있는 것과 대조된다. 창의문은 2015년 12월 2일 보물 제1881호로 지정됐다.

 

돌고래 쉼터와 쉼터 앞 기이한 형태의 소나무

숨이 차오를 땐 멈춰서 쉬어가야 한다

본격적인 코스에 돌입하기 전, 첫 진입지인 창의문 안내소에 비치된 생수를 물병에 가득 담아가는 것이 좋다. 초입부터 가파른 경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북악코스의 정점인 백악마루에 도달하기까지 오르막길이 꽤나 가파르게 이어진다. 성곽의 한 단 한 단을 밟을 때마다 숨이 가빠오고 다리에 힘이 풀리고 목이 탄다. 간간이 외국인 가족들도 볼 수 있는데, 10살도 채 돼 보이지 않는 아이들도 종종 있어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급격한 경사를 타고 호흡이 거칠어질 때쯤 첫 쉼터인 돌고래 쉼터에 도달한다. 일행은 이곳에서 멈춰서 제대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그냥 걷기만 해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데, 성곽을 쌓느라 동원된 인부들은 어땠을까. 공사가 진행되는 시기가 한겨울 아니면 한여름이었으니, 그 노고가 상상이 안 된다. 해설자에 의하면 실록에 872명의 사망자가 있었다고 한다. 외세로부터 도성을 보호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성곽을 쌓다가 수백 명의 국민은 목숨을 잃어야 했던 것이다. 성곽길을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에는 그 분들의 노고가 녹아 있는 셈이다. 더군다나 앞서 언급했듯이 책임소재를 가리기 위해 시작점과 끝점에는 성곽을 쌓은 이의 이름을 새겨 나중에 성석이 무너지거나 부실함이 밝혀지면 담당자는 처벌을 받아야 했다. 지금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잠시 옛 인부들과 감정을 교류하고 있는 사이, 해설사는 짊어지고 온 가방에서 스크랩북을 꺼내 그림들을 한 장 한 장 보여준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다. 해설사는 자취가 사라져버린 것을 옛 산수화를 토대로 복원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쉼터는 무성한 가지를 뻗치고 있는 소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작은 음향장비에서 한국의 전통음악이 흘러나와 마치 내가 한 폭의 한국화에 빠져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을 준다. 기묘한 소나무의 형상들과 이제 제법 서울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북악산의 중턱에서 그렇게 잠시 낯선 풍경과 함께 쉬어간다.

정상인 백악마루를 앞두고 그간의 수고로움을 한순간에 없애주는 듯 환한 팥배나무가 서 있다.
1·21 사태 소나무
백악(북악)산 정상을 알리는 비석

조감도를 보듯 서울 시내를 한눈에… 근현대 변천사는 거저 얻는다

드디어 북악산 정상인 백악마루에 올랐다. 시야가 탁 트이고 세종로가 훤하게 내려다보인다. 멀리 촛대바위도 전면으로 볼 수 있다. 정상답게 북악산 고지를 알리는 비석이 있는데, 북악이 아닌 백악산이라고 새겨져 있다. 해설사는 “비석을 세울 때 백악이 맞다, 북악이 맞다 설왕설래가 오갔는데 실록에는 백악을 더 많이 사용해 비석도 백악으로 새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악 산정을 밟고 조금 내려가면 1·21사태 소나무를 볼 수 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부대의 김신조 외 30명의 무장 공비들이 청와대를 습격할 목적으로 침투해 벌어진 총격전에서 소나무에 총탄자국이 새겨졌고, 이 소나무를 1·21사태 소나무라고 부른다. 조선시대를 지나 근대사의 비극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교과서를 보는 듯하다.

이곳을 즈음해 성 안을 벗어나 성 밖으로 난 길을 걷게 된다. 사람이 드나들고 물자를 나를 수 있는 암문을 지나면 군사들이 순찰을 도는 순성길로 이어진다. 이곳에서는 지금의 건축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성석들을 자세히 볼 수 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건축공법 중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인정받는 그랭이식 건축공법에 따른 것인데, 축성시기에 따라 형태가 다르다. 크게 4시기로 나뉜다. 태조 때(1396)는 자연석을 최소한으로 거칠게 다듬어 사용했고, 사이사이 난 구멍은 작은 돌로 채웠으며, 혹여 무너질 수 있어 성문 안쪽으로 들여서 쌓은 구조다. 세종 때(1422)에는 이전보다는 돌들이 다듬어졌지만 완전한 각이 나오진 않는다. 아래쪽은 큰 돌을 위로 갈수록 작은 돌을 쌓아올려 멀리서 보면 옥수수 알갱이 모양이다. 숙종 때(1704~)부터는 성석이 가로세로 40~45cm 내외의 방형으로 규격화돼 수직으로 쌓았다. 해설사는 “세종 때까지는 임금을 따로 주지 않는 국민들을 동원해 성곽을 쌓았고 숙종 때부터는 군인들이 보수를 받고 일해 각 잡힌 모양이 나왔다는 믿거나말거나 한 설이 있다”고 전했는데, 일리가 있어 보인다. 이어 순조 때(1800~)는 가로세로 60cm가량의 정방형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 쌓아올렸고 앞선 세대보다 확실히 견고함이 느껴진다. 돌의 모양만 보고도 어느 시기의 성곽인지를 알 수 있어 성곽 자체가 귀중한 역사서가 된다. 그렇다고 너무 세세한 역사적 사실에 주목해 주위의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일제의 아픔을 느끼게 해주는 촛대바위

이제 백악 정상에서 본 촛대바위에 다다랐다. 촛대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촛대바위의 높이는 약 13미터. 촛대바위에서 남쪽방향으로 내려다보면 경복궁을 비롯한 서울 도심이 한 눈에 보이는 최적의 풍광을 볼 수 있다. 촛대바위 상단을 유심히 보면 시멘트 기둥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사람으로 따지면 정수리에 해당해, 일제가 그것을 알고 말뚝을 박아 놨다. 이후 이 말뚝을 뽑고 시멘트로 표시를 해놓은 것이다.

촛대바위에서 조금 내려가면 숙정문을 볼 수 있다. 현존하는 도성문 중 좌우 양쪽으로 길이 연결돼 있지 않고 성벽이 연결된 것은 이 문이 유일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물자가 드나드는 일이 많지 않았고, 가뭄이 들었을 때에는 문을 열고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던 곳이다. 1976년 복원돼 성루의 현판에 새겨진 ‘숙정문’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여 있다.

걷기 좋은 와룡공원

소나무 향과 와룡공원의 정취에 취하다보니 곧 종착지

숙정문을 지나면 소나무 향이 그윽한 소나무군락지가 나온다. 이곳 소나무들 대부분은 자생한 것이 아니고 나라에서 산지기를 두고 키우는 것들이다. 옛 한양도성은 소나무가 번성해야 임금의 정기가 오래 간다고 생각해 소나무를 특히나 귀히 여겼는데, 일제가 남벌하면서 훼손된 자락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소나무들을 가져와 지금의 소나무군락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도심에서 이런 소나무 군락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은 시민들에게는 큰 축복이다.

이제부터는 그리 힘들이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주위를 감상하면 된다. 이어진 평평한 지대의 와룡공원에는 화사한 꽃과 함께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벤치들이 자리하고, 모처럼 주말 나들이를 온 가족과 연인들도 간간이 볼 수 있다.

와룡공원 옆으로 도성 안쪽 길을 따라 걷다보면 성북동으로 빠지는 암문이 나온다. 문 밖에 그림처럼 펼쳐진 마을이 바로 북정마을이다. 성벽 밑에 50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1960~70년대 서울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예전에는 문화재를 복원할 때 문화재로부터 몇 미터 안에 있는 건축들은 다 철거를 하는 식이었는데, 현대에 들어 기존 건물들과 공존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여기 북정마을도 성곽길의 한 부분으로서 그들의 삶터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제 마지막 구간인 경신고등학교 뒷길에서 혜화문까지 이어지는 골목길이다. 성벽이 심하게 훼손돼 군데군데 흔적만 남은 길이 끊어지고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한양도성의 흔적을 학교나 주택 담장에서 드문드문 발견할 수 있어 안타깝기이를 데가 없다.

이렇게 이어진 길의 끝, 한양도성의 북동쪽에 있는 혜화문에 다다르며 약 4시간에 걸친 북악코스를 마칠 수 있었다. 조금 빠르게 걸으면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되고 중간 중간에 휴식을 취하며 해설까지 더하면 4시간은 걸리는 코스다. 이 북악코스는 다른 코스에 비해 시간도 근력도 더 필요해 다른 구간을 먼저 경험한 다음에 와도 좋을 것 같다. 성곽길 도보 탐방의 해설을 원한다면 종로구청과 중구청 두 구청에서 신청하면 된다. 각 코스마다 지정 장소에서 안내지도에 스탬프를 찍어주고 있어 4개 코스를 마치면 기념배지를 준다.

도시와 자연, 옛 한양과 현대의 서울을 이어주는 성곽길은 고즈넉한 풍경과 소소한 자연의 빛깔, 그리고 살아 숨 쉬는 지난한 역사와 발전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도시와 사람,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가 압축된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에 한 번쯤 빠져 보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성곽길 북악산 코스 탐방 안내

구간 : 창의문~혜화문
거리 : 4.7km
소요시간 : 약 3시간 반~4시간
경로: 창의문-창의문 안내소-백악 돌고래 쉼터-백악 쉼터-백악마루-1·21 사태 소나무-청운대-암문-백악 곡성-백악 촛대바위-숙정문-말바위 안내소-우수조망명소-와룡공원-암문-서울과학고등학교-경신고등학교-혜성교회-두산빌라-혜화동 전시안내센터(옛 서울시장공관)-혜화문

박희정 기자  doban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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