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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산책하듯 한양도성을 거닐고 싶다면 / 낙산코스 편
  • 박희정 기자
  • 승인 2019.07.10 09:06
  • 호수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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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구간이 시작되는 혜화문

성곽길 도보코스 중 가장 만만하다는(?) 제2코스 낙산구간은 경사가 완만해 걷기에 적당했다. 낙산코스는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이색 데이트 코스이기도 하다. 프랑스 몽마르뜨 언덕보다 좋다는 낙산의 정점 낙산공원에 오르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도심을 느낄 수 있다. 정상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골목길 풍경도 일품이다. 90년대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나 나올 법한 옛 풍경이 현대적 삶 안에서 공존하며 마치 시대를 넘어 펼쳐지는 한 편의 파노라마 같다. 동네 마실 나가듯 가벼운 걸음으로 떠나보자.

 

함께 또는 홀로라도 좋다

제1코스 북악구간이 끝나는 혜화문에서 시작해 낙산을 따라 광희문까지 이어지는 낙산구간은 한양 순성을 첫 시작하는 사람들이 가볼 만한 구간이다. 낙산은 생긴 모양이 낙타 등처럼 생겨 낙타산, 타락산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만큼 경사가 완만해 걷기에 편하다. 도보 시간도 2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어서 연인이나 친구와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고 산책하기에 딱 좋다. 도성을 따라 걷는 길은 대부분 성 안쪽에 조성돼 있어서 주로 어깨높이 정도의 여장만 보이는데, 낙산구간은 전 구간이 성 바깥에서 걸을 수 있게 조성돼, 한양도성의 웅장함과 견고함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낙산의 정점인 낙산공원- 산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낮아 둘레길이라고들 많이 한다-에서는 도심과 가까운 거리만큼 서울 시가지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하다. 백악산에서 서울의 원경이 보인다면, 이곳에서는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도시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노을과 야경은 특히나 아름답다고 한다. 동네 주민들로 보이는 어르신들도 간간히 눈에 띄었는데 그만큼 쉽게 오르내릴 수 있는 곳이다. 낙산공원은 프랑스 몽마르뜨 언덕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몽마르뜨를 다녀온 사람의 말을 빌리자면 그곳보다 더 좋다고 한다. 내려가는 길에는 도성 안에 형성된 옛 마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골목골목 아기자기한 상점들과 커피숍도 즐비해 커피 한 잔하면서 쉬었다 갈 수 있다. 서울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구석구석 느껴지는 서울의 옛 정취에 취해 홀로 걸어도 좋은 길이다.

 

성곽마을 주민들이 애용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커뮤니티공간

내사산 중 가장 낮은 한양의 좌청룡

낙산구간의 시대적 배경으로 들어가 보자. 먼저,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도심의 경계를 표시하고 그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한양은 풍수적으로 명당으로 알려진다. 낙산은 북안산과 남산, 인왕산과 더불어 한양의 내사산을 구성하며 그 능선을 따라 축성됐다. 낙산은 서울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산으로 내사산 중 가장 낮은데(해발높이 124m), 한양의 주산인 북악산을 중심으로 왼쪽에 용이 누워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좌청룡이라고 한다. 해발높이 339m에 달하는 인왕산은 우백호에 해당한다.

6월 6일 현충일에 모인 세 명의 탐방신청자들과 함께 나선 해설사 김종대 씨는 한양의 주산을 북악으로 할 것인가, 인왕으로 할 것인가를 두고 태조 이성계의 양팔이었던 정도전과 무악대사가 설전을 벌인 일화를 전해줬다. 풍수적으로 좌청룡은 장남을 의미하고 우백호는 차남을 의미해, 북악산을 주산으로 했을 때 좌청룡이 낙산이 되고 우백호가 인왕산이 돼 좌청룡이 낮고 우백호가 높아 조선의 적장자 세습이 잘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무악대사는 주장했다고. 그러나 결국 정도전의 주장대로 북악이 한양의 주산이 되면서 무악대사는 이런 예언을 한다. “200년 후에 큰 환란이 일어날 것이다….”

무악대사의 말처럼 이후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조선의 왕위 세습도 순탄치 않았다. 한양을 감싸 안고 있는 산지가 정말 조선의 역사에 불운을 안겨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함에도 한양은 도읍지로서 여전히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한양을 둘러싸고 한강과 청계천이 흐르고, 내사산의 바람과 물, 외사산(북한산, 관악산, 용마산, 덕양산)에 둘러싸여 있는 이곳은, 현대도 서울시민뿐 아니라 세계인의 관광지로 값을 톡톡히 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미세먼지로 까맣게 때가 낀 성돌들

도성 축성에 숨겨진 한국인의 DNA

성곽길은 뭐니 뭐니 해도 말 그대로 성곽을 끼고 도는 길이 일품이다. 낙산코스도 마찬가지. 해설사는 성곽길 축성과 근대 토목공사를 비교하며 한국인의 근성이자 특성을 설명했다. 한양도성의 축성은 1396년 전국 11만 8000명을 동원해서 49일 만에 지어졌다. 평균 높이 약 5~8m에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는 대규모 공사를 단 49일 만에 완공한 것.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부분 개보수는 진행됐다. 세종 때 32만 명이 동원돼 38일 만에 복원작업을 했는데, 이때 나온 사망자가 870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에 견줄 만한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가 있으니, 바로 경부고속도다. 총 428km에 429억원을 들여 2년여 개월 만에 착공한 이 대규모 건설은 세계에서 가장 싼 건설비로 가장 빨리 완공한 공사였다. 물론 77명의 사망자와 개통 후 보수공사비로 1600억원이 들어갔다. 해설사는 현재 대한민국이 보유한 자산 1위인 경부고속도로에서 극명하게 보여주는 한국인의 빨리빨리DNA가 실은 조선시대에서부터 있어서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 아닐까 한다는 생각을 전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배불림 현상으로 은색 지지대(빨간색 표시)가 군데군데 설치된 모습

성곽길은 현재까지는 본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지만 세월이 흐른 만큼 지속적인 관리와 개보수가 필요한 지점들이 하나둘 눈에 띄었다. 성돌 사이에 꽃씨가 들어가 자라면서 돌들 간 간격이 벌어지고 겨울에 결빙이 되면서 팽창돼 채워진 흙이 떨어져 나와, 성돌이 앞으로 튀어나오는 배불림 현상이 나타나 있었다. 성돌 중 하나만 제대로 튀어나와도 전체가 와르르 무너질 위험이 있는 상태였다. 성곽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놓아둔 4~5cm가량의 지지대를 볼 수 있었는데, 이런 것을 훔쳐 가는 사람도 있다고 해 당혹감을 안겨줬다.

또 한 가지 성곽을 훼손케 하는 것이 있었는데, 뜻밖에도 공해였다. 낙산은 높이가 높지 않아 도심과 가까워서인지, 도심으로부터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었다. 낙산코스 초입부터 시꺼멓게 그을려진 듯 보이는 성돌들을 확인할 수 있다. 차량으로부터 오는 미세먼지 때문이다. 환경문제가 문화재를 훼손하는 지경에까지 이를 정도로 심각한 현상이 됐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성곽마을의 특징이기도 한 골목길

관광의 메카, 주민들에게는 달갑지만은 않다

한국을 관광하러 오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서울을 방문하고 그 대부분은 종로구에 집중된다. 가장 한국적인 얼굴을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서울 성곽길은 걸어서 3~4시간이면 충분히 돌 수 있어 한국을 이해하고 알 수 있는 관광지로서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인정을 받는다.

하지만 국내외를 막론하고 하루에도 수백명씩 찾아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주민들은 관광객들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낙산 정상에 오르기 전 장수마을이 있다. 60년대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마을을 형성한 곳인데, 다른 데보다 공기가 좋아서인지 실제 장수하는 어르신들이 많고 주민들 스스로 모든 주민들의 장수를 염원하는 마음에서 ‘장수마을’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해설사는 우리는 관광객으로 왔지만 이 분들은 여기서 생활을 하시는 곳이니, 너무 크게 떠들거나 지나친 촬영을 자제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낙산공원에서 정점을 찍고 내려가는 길에는 여러 골목길이 연결돼 있다. 상업 가게들도 있지만 주거지로서 생활하는 주민들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도심에 비해서 개발이 늦고 낙후된 지역이어서 예술가들이 싼 임대료 때문에 모여서 살게 됐고, 예술가들이 이른바 도시재생을 위해 골목과 오래된 건물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며, 핫플레이스로 젊은이들 사이에 자리 잡았다. 이렇게 변화를 맞은 성곽마을은 활기를 되찾고 상가도 활력을 띄어갔지만, 그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는 원주민들에게 늘어나는 관광객들은 그리 달가운 존재가 아니다. 실제 골목길에 그려진 물고기 벽화를 구경하러 오는 관광객들 때문에 사생활이 불편해지자 동네주민이 단색 페인트로 그림을 아예 지워버린 곳도 볼 수 있었다. 성곽길에서 연결되는 골목 상권과 그보다 조금 아래 위치한 주민들 간 충돌도 비일비재한 일이 돼 있다.

일명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 해외 유명관광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한국에도 재현되고 있는 현실이다. 사생활을 보호받지 못하는 원주민들이 관광객을 피해 떠나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은 새로운 관광의 형태가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해설사는 그 가운데 요즘 유행하는 관광은 말하는 관광이 아니라 침묵관광, 눈으로 보는 관광이라고 소개했다. 더불어 개별관광, 가족관광과 같이 관광이 소규모로 이뤄지고 여행사에서 단체버스로 이동시키는 뻔한, 이를 테면 경복궁 순례와 같은 것이 아니라, 직접 광장시장 같은 재래시장을 찾아다니며 관광하는 식으로 관광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 성곽길과 같은 문화유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문화관광 콘텐츠의 변화도 눈에 띄는 점이라고 한다. 성곽길만 해도 워크 콘서트, 달빛여행과 같이 스토리가 있고, 이색적인 관광콘텐츠 개발로 관광의 형태가 다변화되고 있다. 해설사는 콘텐츠의 개발이 그처럼 다양하게 바뀌는 것은 좋으나 그것이 주민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는 일이기에 조심할 필요는 있다고 전했다.

 

동대문성곽공원 옆, 한양도성 전체 구간 중 가장 많은 각자성석을 볼 수 있는 곳

현대식 건물을 휘감으며 위용을 뽐내는 동대문

낙산구간이 끝나는 부분의 도성 바깥에는 한양도성 전체 구간 중 가장 많은 각자성석을 볼 수 있다. 성곽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각자성석을 이곳에 모아놓아서다. 각자성석은 공사실명제라고도 할 수 있으며 무너지거나 보수공사가 필요했을 때 책임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축성담당 군현이나 책임자의 이름을 새겨 넣은 돌을 말한다. 

성곽길을 뒤로 하고 탁 트인 시가지가 한눈에 보이면서 낙산코스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전면에는 서울 시가지가 내다보이고, 그 중앙에 중심을 잡고 있는 흥인지문이 보인다. 한양의 동대문이다. 흥인지문을 중심으로 휘감아 도는 자동차들과 건물의 네온사인을 보고 있자니, 현대와 과거를 잇는 야경이 일품이었던 광고가 저절로 연상된다. 흥인지문은 지세가 낮아 적들로부터의 방어를 위해 성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도록 항아리 모양의 옹성을 두르고 있다. 4대문 중 유일하게 옹성이 존재하는 곳이 이곳 흥인지문이다. 단 하나 아쉽게도 흥인지문은 도시의 한 가운데 있어서인지 기와가 순도 100%에 가까울 정도로 시커멓게 변색돼 있어 안타까움을 줬다.

한양의 내수인 청계천이 흘러나가는 오간수문(위)과 이간수문 터(아래)

이제 낙산코스의 종착지인 광희문으로 가는 길이다. 청계천에서 두 개의 수문을 볼 수 있는데, 오간수문과 이간수문 터다. 한양에서 물이 나가는 두 개의 수문이었던 이곳은 청계천 개발공사 과정에서 발견됐고, 이 때문에 인근 공원의 이름이 종전과 달리 동대문역사문화공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드디어 도착한 광희문. 옛 시절 이곳은 시체들이 나가는 문이라고 해서 ‘시구문’이라고 불리기도 했다는데, 4대문 중 광명의 문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가장 대접받지 못한 문이었던 셈이다.

낙산코스를 걷기 좋은 산책길로 활용하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주어진 선물과 같다. 옛 문화유산을 우리의 일상으로 끌어와 만끽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우리들만의 것인 양 착각해서는 안 된다. 역사를 보전하는 것, 문화재가 훼손되지 않도록 가꾸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온 주민들의 일상도 생각하면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든다. 이따금씩 아름다운 야간 조명과 함께 빛나는 낙산 성곽 위에 올라가 이야기를 나누는 연인들이 있다고 한다.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장면 같지만 그를 두고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아름답지가 않다. 개념 없는 모습이다. 한두 명의 작은 일탈이 큰 화를 불러올 수도 있음을 명심하자.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흥인지문

 

낙산구간 안내

구간 : 혜화문~광희문
소요시간 : 약 2시간 30분
경로  : 혜화문 - 낙산공원 - 동대문 성곽공원(옛 이대 동대문 병원) - 흥인지문 - 오간수문 터 - 이간수문 - 동대문역사문화공원 - 광희문

박희정 기자  doban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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