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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의 아픈 역사와 함께 농축된 남산성곽의 절경 / 남산코스 편
  • 박희정 기자
  • 승인 2019.08.10 09:06
  • 호수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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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구간이 시작되는 광희문과 민들레꽃밭

서울의 중심에 자리한 남산은 봄과 가을에 특히나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꽃과 단풍이 도성과 어우러져 발하는 고즈넉한 멋에 시민들의 발길이 줄지 않는 곳이다. 한여름에 오르는 남산이라고 해서 그 풍광이 줄어드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남산 성곽길 순성에 나선 날, 뜨거운 여름 햇볕이었지만 다행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걸음을 도왔다. 북악산과 같이 험난하지 않고 그렇다고 낙산구간처럼 가볍지 않은, 한양도성의 남산은 아픈 역사에도 농축된 멋이 있었다. 일제의 수난과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지난 세월이 빚어낸 아픔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성곽길이 바로 이곳 남산이다. 지난 역사의 상처와 오류를 고스란히 수용하며 옛 한양과 지금의 서울을 지켜온 남산 성곽길이 빚어내는 또 다른 한국의 미를 들여다보자.

 

가볍지도 험난하지도 않은

남산은 서울시민뿐 아니라 외국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 중 한 곳이다. 탁 트인 정상에서 서울의 도심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고, 남산데이트의 결정체인 사랑의 열쇠 때문에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로 일찍이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는 남산의 아주 일부분일 뿐이다. 남산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다채로운 멋은 버스나 케이블카를 타고 수직 이동하는 정상에서 만으로는 충분히 느낄 수 없다. 도성과 어우러져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에 한양의 역사와 농축된 남산의 절경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한양도성의 2코스가 끝나는 광희문에서부터다. 광희문은 한양순성의 세 번째 코스인 남산구간의 시작점이 다. 한양도성은 4개의 산을 따라 축성된 도시성벽으로서, 고려 멸망 후 이성계의 한양천도로 종묘사직과 경복궁을 지은 뒤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동서남북으로 성벽을 쌓은 것이다. 전체 길이는 18.6km인데, 현재는 13km 정도가 남았다. 약 5km는 사라졌거나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중 남산 구간은 5.6km. 4개 코스로 이뤄진 성곽길 가운데 가장 긴 구간이다. 난이도는 높지 않으나 그렇다고 산책코스 수준으로 가볍지도 않다. 다만 장시간을 걷고 계단을 올라야 하기 때문에 만만히 볼 정도는 아니다. 더구나 한여름이라면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필요하다. 기자가 남산 순성에 오른 날은 여름의 따가운 햇빛이 내렸지만 다행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한 가족 일행과 함께 첫 발을 떼기 전, 해설사 이숙영씨는 광희문에 얽힌 이야기 하나를 들려줬다. 광희문은 광명의 문이라는 뜻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죽은 시체들을 성 밖으로 내보내는 문으로 통용돼 시구문이라고 불렸고, 그 탓에 주변에 자연히 공동묘지나 화장터가 많았다. 인근의 신당동의 이름도 갑오개혁 전까지는 귀신신(神)자를 썼는데 오늘날에는 새신(新)자로 바뀌었다고 한다.

광희문에서 해설사가 빠뜨리지 않는 설명 가운데 또 하나는 광희문 대각선 찻길, 공중전화부스 뒤에 남아 있는 성돌이다. 숙종 때 쌓은 정사각형 모양의 이 성돌은 성곽에서 떨어져 있지만 그 하나하나가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 광희문도 원래 지금의 자리가 아니라 도로에 있었는데, 1974년 박정희 정부 때 임진왜란 당시 불타오른 것을 도로를 확장하면서 15m 정도 옮긴 것이라고 한다. 본래 성곽의 연결성과 대문의 위치가 그대로 보존되지 않은 것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떨어 뜨리는 것이기도 해 아쉬움이 남는다.

성돌을 다듬기 위해 뜬 흔적
나무계단길과 각자성석

끊어졌다 이어졌다 반복되는 길

광희문을 시작으로 하는 성곽길은 끊어졌다 이어졌다를 반복한다. 도성 4개 구간 가운데 가장 훼손이 심한 구간이 남산코스다. 도로변, 주택가로 드문드문 모습을 보이는 성돌은 옛 성곽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지만 세월의 풍파에 많은 부분이 분실되거나 훼손돼 있었다. 현대에 와서 복원된 것들은 예스러움과 멋이 살지 않는 인공적인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광희문을 따라 오르는 성곽길 왼편의 잘 조성된 민들레꽃은 이러한 아쉬움을 위로해주는 듯하다. 오른편의 아기자기한 상가나 주택가도 성곽길과 잘 조화돼 도심에서 좀처럼 누릴 수 없는 아늑한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과거 재벌 총수들이 살던 장충동을 지나 성곽예술문화거리를 오르는 초입, 도성 축성 당시 돌을 뜬 흔적을 볼 수 있다. 큰 성돌에 쐐기가 박힌 흔적인데, 그 홈에 흙이나 물을 붓고 기다리면 돌이 저절로 갈라져 성돌을 다듬을 수 있었다고 한다. 좀더 길을 오르면, 다른 성곽길과 마찬가지로 군현을 표시한 각자성석을 확인할 수 있다. ‘생(生)’자와 ‘곤(崑)’자가 새겨진 각자성석을 찾을 수 있는데, 이 구간의 성벽은 경상도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쌓았다는 것을 알려준다.

평지부의 석성은 대부분 세종 때 새로 쌓은 것으로 옥수수알 모양으로 다듬은 돌을 사용했다. 상대적으로 큰 돌을 아랫부분에 놓아 균형을 유지했는데, 이 형태의 성벽은 장충체육관 뒷길에서 잘 볼 수 있다. 성돌 안은 잡석과 돌이 맞물려 있어 쉽게 무너지지 않는 그랭이 기법이 활용됐다. 안시성 영화에서도 나왔듯, 포를 쏜 자리만 무너지고 안은 무너지지 않는 것이, 고려 때 내려오는 그랭이 기법이 그대로 한양도성의 축성에 적용된 것임을 알려준다. 이는 그만큼 조상들의 노고가 상당했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축성 당시 기록에는 세종 때 32만 명의 백성을 동원해 872명의 사망자가 나온 것으로 돼 있는데, 이는 기록일 뿐 후유증으로 죽은 사람은 2000~3000명 정도 된다고 한다. 남산 성곽길은 초입부터 소나무와 어우러져 참 아름다운 길이다. 이 길을 닦기 위해 흘렸을 조상들의 피와 땀을 기억하는 것도 쉽게 이 아름다운 길을 거니는 우리들이 갖춰야 할 예의가 아닐까.

 

남산의 유일한 암문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남산

한양도성에는 8개의 암문이 있는데, 남산에는 딱 한 곳이 있다. 암문은 말 그대로 유사시 사용하기 위해 마련해 둔 문으로서, 암문에 대한 기록은 어떤 문서에도 남아 있지 않다. 난리 때 암문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공개하지 않은 것인데, 실제적으로는 그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병자호란 때 인조와 조정이 남한산성으로 몽진을 떠나면서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는 도성과 긴밀한 통로 역할을 해야 할 암문은 기능을 하지 못하고 유적으로만 남아 있다. 성곽 위에 만들어진 근총안(경사진 구멍)과 원총안(평탄한 구멍), 최후의 무기인 여장도 마찬가지다.

이어지는 반얀트리호텔로 오르는 성곽길은 현대에 와서 옛성곽을 복원해놓은 것인데, 옛 성돌의 색깔과 비슷한 돌을 쌓아 시멘트로 붙여 놓은 모습이 마치 거북이 등껍데기마냥 부조화를 이뤘다. 이숙영 해설사는 “박정희 정권 때 시멘트 산업이 융성하면서 성곽 복원에도 시멘트를 사용해 세월이 흐르면서 떨어져 나간 것”이라며, “이런 싸구려 복원은 남산에서만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먼 옛날 기술도 인력도 부족했던 시기에 힘겹게 쌓아올린 성곽의 고유한 한국의 미는 온데간데없고 급하게 자리를 메워둔 성급함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남산구간은 한양도성코스 가운데 가장 많이 훼손된 구간이다. 반얀트리호텔로도 성벽이 이어져야 하지만 성벽의 중요성을 생각하지 않고 많은 부분 훼손했다.

잘못 복원된 성곽의 예

한양성벽을 이루는 성돌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돌로서, 성곽길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514년의 조선이라는 한 나라의 도시를 수용했다는 것과 최장길이를 보유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부족하다는 것이 등재에 있어서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잘못된 복원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문화재는 제자리에 복원해야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광희문과 함께 혜화문도 본래의 자리에서 비껴 있고, 남산구간은 성곽이 옛 모습 그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끊어져 있는 부분이 많으며, 복원된 성곽도 옛 성돌과 너무 다른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어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근거가 된다. 지난 2013년도에 한양도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를 해서 그 결과가 2017년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발표 직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내려놨다. 한 번 탈락을 하면 다시는 등재할 기회를 얻을 수 없어 3년 간 미뤄 2020년도에 유산 등재여부가 발표될 예정이다.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남산성곽의 안쪽 길

생채기에도 어쩔 수 없는 아름다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어설픈 복원에도 농축된 남산의 아름다움은 어쩔 수 없다. 굽이굽이 조성된 소나무향을 맡으며 오르는 나무계단길은 힘겹지만 자연과 성벽이 너무나 잘 어우러져 한 계단 한 계단이 진풍경이다. 태조 시기의 성벽은 축성된 지 이미 600여 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초축 당시의 모습을 유지한 성벽이 상당 부분 남아 있다. 특히 남산의 동쪽 능선을 따라 조성된 나무계단길 옆에 태조 때의 성벽이 길게 이어져 있다. 단, 계단길이 생각보다 길고 경사가 있어 컨디션과 속도조절을 하면서 올라야 한다. 오전에 출발하는 경우라면 꼭 식사를 하고 초콜릿이나 수분이 많은 과일, 생수를 준비할 것을 권한다. 빈속에 오르는 경우 급작스럽게 현기증이 나거나 몸에 무리가 갈 수 있다. 본래 건강하고 운동을 즐기는 체질이라 하더라도 한여름의 산행은 더욱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버스를 타고 쉽게 정상에 올라 아름다운 성벽의 구조와 모양, 산세를 놓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조선시대에는 산에도 벼슬을 내렸는데, 남산의 옛 이름인 목멱을 따서 ‘목멱대왕’이라는 벼슬을 내렸을 정도이니, 꼭 그 경치를 실견하기를 권한다.

힘겨운 나무계단길을 끝내고 펼쳐지는 평지에 이르면 보통은 왼쪽 성벽과 도로를 따라 오르기 마련인데, 해설사의 안내로, 약간은 돌아가는 길이지만 성벽 안의 무척이나 아름답게 조성된 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 기이하게 꺾긴 소나무들과 아기자기하게 조성된 풀밭이 굽이진 성벽과 조화된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한양도성의 매력이라면 이처럼 가보지 않은 길을 찾아 가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해설사는 전했다.

마치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생각나게 하는 말이다. 숲 속 노랗게 물든 똑같이 아름다운 두 갈래의 길 중, 풀이 많이 나 있고 사람들이 덜 다닌 다른 길을 선택했다는 시인처럼, 성곽길은 성의 안쪽과 바깥쪽 여러 갈래로 나 있는 길 중에서 언제든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묘미가 있다. 그렇게 마주한 낯선 길은 물들지 않은 감성을 선물해준다.

국사당 터에 세워진 팔각정
흉물스러운 사랑의 열쇠

드디어 남산의 정상

남산타워와 팔각정, 국사당 터가 있는 곳에 다다를 즈음, 한국인보다 2~3배나 많은 외국인들로 북적거린다. 주말을 즐기러 온 가족들,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모여든 정상에 서니, 이곳이 서울의 명소임을 실감하게 된다.

남산 정상의 진가는 시야를 훤하게 하는 서울도심의 모습에 있다. 왼쪽에는 왕과 왕비의 신의를 모시는 사당인 종묘, 오른쪽에는 곡물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이 있고, 그 가운데 경복궁을 마주할 수 있다. 이렇게 훤히 한양과 궁궐이 노출되기 때문에 축성당시 20일 동안 소나무를 심고 남산에 오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때도 있었다고 한다.남산 정상엔 서울의 지리적 중심점을 나타내는 조형물도 있고, 지금의 광역 케이블통신과 같은 역할을 했던 기념물 제13호로 지정된 봉수대터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연인들의 서약인 사랑의 열쇠. 정상을 즈음해서 내려가는 길목의 울타리 곳곳에 빼곡히 차 있는 열쇠는 미간을 찌푸리게 한다. 지극이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인위적인 설치물이 도가 지나쳐 자연의 정취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서울 시가지, 내사산으로 둘러싸인 도심의 빌딩숲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산 팔각정 자리는 조선시대 국사당이 있던 자리이기도 하다. 조선 태조는 남산에서는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국가 제사만 지낼 수 있게 했다. 그러다 1921년부터 1925년까지 일제가 남산 중턱에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인왕산 기슭에 옮겨졌다. 이 과정에서 주변 성벽 대부분이 파괴됐다. 현재는 복원사업을 통해 옛 모습을 상당부분 회복한 상태이지만, 그 자체로 청산되지 않은 일제의 잔재가 스며있는 아픈 역사의 단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백범광장

이런 까닭에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목에는 이를 기억하기 위해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백범광장을 조성해 항일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기념물이 많다. 일제 식민지배의 상징을 항일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대체한 것이다. 백범광장 일대의 한양도성은 일제강점기 조선신궁을 지을 때 모두 철거되거나 흙 속에 묻혔다가 최근 다시 쌓았다. 다만 지형 훼손이 심해 원형을 살릴 수 없는 구간에는 성벽이 지나던 자리임을 알 수 있도록 바닥에 흔적을 표시해뒀다.

백범광장에서 도시로 내려오면 종착지인 숭례문에 다다른다. 광장 왼편으로 현대에 새로 쌓은 성벽이 이어지는데 너무 현대적인 성돌로 쌓아 이어져 온 성곽길의 멋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양도성의 정문으로서 사신을 맞이했던 숭례문 역시 화마에 휩싸이기 전 국보 1호의 이미지는 많은 부분 사라졌다. 인위적인 복원이 가져온 가치훼손은 안타깝지만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지난한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한양도성 남산코스는 그 자체로 세월과 도시와 서울의 시민들을 끌어안고 있다. 남산성곽은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많은 것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과거 어쩔 수 없는 외세의 수난에 할퀸 자국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의 손으로 조상들이 목숨을 바쳐 완성한 성곽을 훼손하는 일은 더는 없어야 할 것이다. 복원은 옛모습을 회복함을 뜻한다. 급하게 흉내만 내는 어설픈 복원은 아니 한 것만 못한 결과를 낳는다. 세계문화유산을 바라보는 도성이 이제는 아픔을 멈추고 그 아름다움에 걸맞은 모습을 돌이키는 데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도시로 내려오는 길에서 본 남산 N서울타워

 

 

한양도성 남산(목멱산) 구간 안내
구간 : 광희문-주택가-장충구간 성곽길-반얀트리호텔-자유총연맹-국립극장-남산 나무계단길-N서울타워, 팔각정, 국사당 터-남산 봉수대-잠두봉 포토아일랜드-안중근 의사 기념관-백범광장-숭례문
소요시간 : 약 4시간 반

 

박희정 기자  doban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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