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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산수화길- 그림에 취하고 시에 젖다겸재의 그림과 윤동주의 시를 함께 감상하는 절묘한 오버랩
  • 박희정 기자
  • 승인 2019.09.10 09:14
  • 호수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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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무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바로 겸재의 그림 ‘장안연우’ 속 마을이다.

겸재 정선의 흔적을 따라가 보기 위해 찾아 나선 진경산수화길 탐방코스. 그림 속 실경을 찾아 나선 길은 단지 그의 발자취만을 밟아가지 않았다. 장동팔경첩의 배경이 된 인왕산 남쪽 기슭은 시인 윤동주와 조우하게 하며- 마침 그날은 광복절이었다- 그 덕에 조선부터 일제강점기, 현대에 이르는 역사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 거닐 수 있었다. 비까지 내려 그림과 시, 실경이 전해오는 감각은 배가됐다. 진경산수화의 거장이 걸었던 자연을 찾아 떠난 길은, 그렇게 앞이 조금 흐리기는 했지만, 뜻하지 않은 문학적 감수성과 역사의식, 시대를 오가는 시공간이 뒤섞이며 만감을 교류하게 했다.

 

시인의 언덕 위 겸재 정선의 ‘장안연우’ 표지

겸재를 찾아 나선 길, 윤동주를 추억하다

종로구 골목길 탐방코스 중 하나인 진경산수화길은 우리 산수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은 겸재 정선(1676-1759년)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이다. 겸재 정선이 태어나고 자란 터를 돌아보며 그림에 등장했던 배경을 들여다보고, 한국 전통회화를 대표하는 작품과 작가의 일생, 그리고 시대적 배경을 알아볼 수 있다.

서시가 새겨진 윤동주의 시비. 그 뒤로 남산이 있다

탐방을 위해 윤동주 문학관에 모인 일행은 첫 코스인 ‘시인의 언덕’에 오르기 전, 날씨 탓에 본래 코스에 포함되지 않은윤동주 문학관을 들어가 보기로 했다. 서시, 별 헤는 밤, 쉽게 씌여진 시…. 광복절을 6개월 남짓 남겨놓고 생을 마감한 그의 짧지만 강렬했던 생의 여운은 현재까지도 그의 시를 통해 전해진다. 별 헤는 밤에서 시인 윤동주는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중략)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라고 노래했다. 그의 말대로 현재 그를 추억할 수 있는 시인의 언덕 위에 풀이 무성했다.

그는 학창시절 매일 아침 학교에 가기 전 인왕산 자락을 올라 도성 안을 바라보며 자연과 시를 가슴에 담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문학관과 시인의 언덕이 그가 거닐던 청운동 자락에 지어진 것이다.

 

시인의 언덕에 마련된 무대에는 이따금씩 음악공연이 펼쳐진다.

시인의 언덕, 그리고 겸재

‘시인의 언덕’은 문학관을 왼쪽으로 끼고 조성된 나무계단을 오르면 나오는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공원이다. 그곳엔 시인 윤동주의 대표작인 서시를 새겨놓은 시비가 있다. 해설사 홍미영 씨는 일행들에게 서시를 읊기를 권하면서도 “다 낭독하지 않으면 다음 코스로 못 간다”고 농담을 건넨다. 중학 교과서에서 본 기억이 있는 까마득한 서시, 시인의 언덕에서 음미해보는 시어들이 참 새롭다. 암울한 민족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자아성찰의 시 세계를 보여준 윤동주를 광복절에 다시 만나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시인의 언덕 위 북한산 조망대. 북쪽으로는 북한산의 비봉능선이 한눈에 펼쳐진다.

그리고 이곳 시인의 언덕에서 드디어 겸재를 만나볼 수 있다. 시비 옆에는 ‘장안연우’라는 한 폭의 그림과 함께 실경의 위치를 보여주는 지도와, 짧은 설명이 있다. 겸재 정선이 장동팔경에 남긴 이 그림은, 봄을 재촉하는 이슬비가 내리는 날에 백악산 서쪽 기슭에 올라가 서울 장안을 내려다보며 그린 그림이다. 그림 속 멀리 보이는 산이 남산이고, 그 아래로 마을과 경복궁이 있다. 이날은 이슬비보다는 빗줄기가 세어서 실제는 남산이 거의 보이지 않아 그림 속 풍경을 실견할 수는 없었다.

한옥은 시인의 언덕 아래에 있는 문학도서관으로, 도서관 앞 산기슭이 백운동천 각자가 있는 자리로 청계천의 발원지다

진경산수의 흐름을 바꾼 대가

정선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시로 읊은 시인들로부터 진경산수화의 사상적 예술적 영향을 받았다. 그 가운데서도 진경시의 대가인 사천 이병연(1671-1751년)과 평생에 걸친 지기가 돼 시화를 서로 교환하며 성장했다. 정선의 초기작은 실경산수와 회화식 전통에 근거해 마침내 조선의 그림 속에 조선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하는 진경산수라는 새로운 양식을 개척하게 된다.

화가들 중 드물게 장수한 정선은- 그는 84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70대 이후 붓을 들면 의식하지 않아도 그림이 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자유스러운 필묵법은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벗어나지 않았는데, 이 시기의 작품은 언뜻 보면 미완성인 것 같은 파격적 구도와 생략적 묘사가 종종 등장한다.

70대 만년의 무르익은 필치를 보여주는 장동팔경첩은 인왕산 남쪽 기슭에서 백악 계곡에 이르는 장동지역, 즉 현재의 효자동과 청운동 일대의 뛰어난 여덟 곳의 경치를 그렸으며, 필운대, 청풍계, 자하동, 취미대, 수성동이 그에 해당한다. 능란한 소나무 묘법이나 듬성듬성 산세에 찍은 미점이 정선 특유의 진경산수화의 원숙함을 더한다.

 

수성동 계곡

탐방코스의 마지막, 수성동 계곡

진경산수화길의 주요 코스 가운데, 겸재와 직접 연계된 코스는 아쉽지만 이날 비가 내리는 바람에 코스가 변경돼 모두 가볼 수는 없었다. 경복고등학교 안에 있는 겸재 집터, 경기고등학교 안에 있는 청휘각이 그렇고, 개인 집 차고에 있는 가재우물터- 현재는 우물 흔적도 없다고 한다-, 군인 아파트 놀이터에 있는 인곡정사터가 그렇다.

수성동 계곡에 위치한 기린교

그래도 탐방의 마지막이자 겸재의 그림 속 풍경과 거의 유사하게 복원돼 있는 수성동은 놓치지 않고 가볼 수 있었다. ‘수성동 계곡’은 시내와 암석의 경치가 빼어났던 인왕산 기슭 수성동 계곡 골짜기를 그린 그림이다. 그림에는 안평대군(1418-1453년)이 살던 비해당 터와 기린교로 추정되는 다리가 있다.

먼저 ‘복원’이라고 말한 것은 1971년 계곡 좌우로 옥인시범아파트 9개동이 들어서면서 잃었던 경관을 40년이 지난 2012년, 아파트를 철거하고 수성동 계곡 본래의 모습을 되찾게 됐기 때문이다. 조선의 화가 겸재의 시선이 머물렀던 곳, 그리기만 해도 그림이 되었던 수려한 경관을 이제라도 되찾아 다행이다.

수성동 계곡 앞 겸재의 그림 표지

이제 화가의 눈으로 바라본 아름다운 경치는 마음의 풍경이 돼 우리에게 전해온다. 화가가 바라본 곳은 곧 화가의 마음이 머문 곳이다. 그 감동의 순간을 붓 끝으로 담아낸 겸재, 그리고 아름다운 시어로 읊은 윤동주.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행위는 노래라고 했다. 시와 그림은 자연과 그와 더불어 사는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 위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놓치고 싶지 않은 아름다운 풍경을 눈으로 마음으로 담은 그들의 발자취를 한 번 따라가 보는 것이 어떨까?

 

골목길 탐방 진경산수화길 주요 코스 (종로테마여행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 및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시인의 언덕 → 백운동천 각자 및 김가진 집 터 → 청송당 터 → 백세청풍 각자 및 김상용 집 터 → 송강 정철 집 터 → 겸재 정선 집 터 → 청휘각, 가재우물터 → 인곡정사 터 → 수성동계곡

박희정 기자  doban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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