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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지구를 빌려 쓰는 것처럼’ 생태주의 디자인
  • 임호동 기자
  • 승인 2019.12.02 10:59
  • 호수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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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데르트바서의 대표건축물 중 하나인 블루마우 온천마을 호텔

자로 잰 듯 획일화되고 각이 딱 맞는 디자인은 정갈하고 멋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순간을 지나고 보면 숨을 옥죄듯 답답하고 단순해 보인다. 진짜 멋스러움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최근 가장 아름다운 멋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다 못해 자연의 일부처럼 보이는 디자인이다. 꾸미지 않은 것처럼 편안하고 조화로운 그 순간 우리는 진정한 멋스러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생태주의 디자인으로 인간과 자연을 치유하려 했던 건축가 훈데르트바서

인간을 지치게 하는 현대 디자인, 답은 자연에 있다

획일적으로 정리된 느낌의 도로와 빌딩, 비슷한 느낌과 색상의 건물로 사방이 막힌 시야, 땅을 뒤덮은 아스팔트. 흔히 우리가 볼 수 있는 도시의 모습이다. 누군가는 깔끔하고 정리된 느낌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도시는 사람들에게 만성스트레스와 무기력함, 그리고 우울을 선물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전문가들은 자연에서 찾고 있다. 실제 지난 2013년 미국 스탠포드 환경대학원은 도시인들이 겪는 우울증과 정신장애에 집중했고, 자연 속에서 산책하는 것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의 원인이 되는 반추(강박적인 부정적 사고와 자기비판)를 줄여주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 건강한 남녀 38명을 대상으로 반추 성향을 조사한 뒤 뇌를 스캔한 연구진은 일부 사람들에게 매일 90분씩 녹지나 자연 속에서 산책을 하도록 했다. 그 결과 녹지와 자연에서 산책을 한 사람들의 반추가 훨씬 줄어든 것이다. 이에 최근 도시계획자들은 도시 속에 자연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역시 더 많은 도시공원, 녹지 등을 만들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는 자연을 잘 반영한 건물이 이미 존재한다. 1986년 완공된 공동주택 ‘훈데르트바서 하우스’가 그 주인공이다. 30여년 이전에 지어진 이 건물은 화강암, 목탄, 벽돌 등 자연적인 소재로 지어졌으며, 나선형과 곡선으로 이뤄진 형태이자 다채로운 색깔로 구성돼 마치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마당은 물론 지붕과 벽에 흙을 깔아 정원이 꾸며져 있는데, 이는 옥상정원의 시발점으로 불린다.

시대를 앞서간 이 건물은 생태주의 예술가이자 환경운동가 ‘프리덴스라이히 레겐타크 둥켈분트 훈데르트바서’의 대표작이다. 뛰어난 색채 조합으로 화가로서 인정받은 훈데르트바서는 자연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온 생태주의자였다.

그는 건축물에 있어서도 생태주의를 강조했는데, 그는 “자로잰 듯한 직선, 무미건조한 콘크리트, 획일적으로 지어진 건물은 인간의 정체성을 감추는 범죄”라며 “기능주의와 실용주의에 바탕을 둔 현대건축물이 사람을 병들게 하고 있다”고 생태주의를 주장했다.

1983년 빈 시로부터 공동주택 건설을 의뢰받은 훈데르트바서는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해 자연에 존재하는 곡선과 나선으로 주택을 건설했다. 그리고 자신의 감각을 최대한 살려 다채롭고 아름다운 색을 조화시켜 획일화된 단색의 건물들과 차이를 보였다. 또한 “인간의 삶은 자연을 잠깐 빌리는 것이며, 땅의 주인은 나무”라고 주장해온 그는 건물의 빈 공간마다 흙을 뿌리고 정원을 가꿨다.

이렇게 탄생한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보는 것만으로 도시에서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힘을 보여줬고, 아직도 빈 시를 대표하는 건물로 꼽히고 있다. 또한 그가 설계한 ‘쿤스트하우스 빈’, ‘스피툴라우 소각장’, 오스트리아 슈타이어마르크주의 ‘블루마우 온천 마을’ 역시 자연과 조화를 이룬 건축물이자 세상에서 아름다운 건축물로 인정받고 있다.

사람들은 훈데르트바서의 건축물이 매마른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평가를 했고, 훈데르트바서는 ‘건축 치료사’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생태주의 디자인의 대표적 사례 옥상정원

조화와 공존, 그리고 미래

훈데르트바서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주장했고, 스스로 자연보호, 산림운동, 반핵운동 등에 투신한 실천하는 환경 운동가였다. “인간은 지구에 온 손님, 주인인 자연에게 돌려주자”라는 그의 정신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후대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 대표적인 디자인이 바로 옥상정원이다. 옥상정원은 건축물의 상부, 즉 옥상이나 테라스, 발코니, 베란다 등의 공간에 나무나 풀을 심어 녹지로 가꾸는 정원을 말한다. 건물로 녹지를 뺏은 만큼 마당을 비롯해 옥상, 발코니 심지어 창문에도 식물을 가꾸려 했던 훈데르트바서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옥상정원은 2000년대까지 주목받지 못하다 최근 주목받고 있다.

급속한 도시화와 인구집중은 도시에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잦은 도시 홍수, 열섬현상 등이 도시에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자연과의 조화를 생각하지 않고 형성된 도시였다. 사라진 녹지는 도시의 홍수를 유발하고, 늘어난 건물은 공기의 순환을 막는 원인이 됐다.

도시에서 갖게 되는 스트레스와 우울감 등 정신적인 문제 외에도 환경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은 것이 바로 자연이다. 사람들은 건물의 빈 공간에 녹지를 꾸미기 시작했다.

건물을 위해 자연에게 녹지를 뺏은 만큼 옥상에 녹지를 조성하자 건물에 조성된 녹지는 미약하게나마 자연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대기를 정화시키고, 열섬효과를 완화하는 효과를 냈다. 야생동물을 보호했고, 사람들은 마련된 녹지에서 휴양할 수 있게 됐다. 심지어 옥상정원은 채소나 과일, 작물을 재배할 수 있어 도시 농업도 시도할 수 있는 주요한 자원이 되고 있으며, 건물의 온도 조절 효과까지 있어 에너지 절감의 효과도 내고 있다. 이에 세계 각국이 도시 정원에 주목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지자체가 나서서 하늘정원, 옥상정원 등의 이름으로 도시에서 녹지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훈데르트바서의 대표작 훈데르트바서하우스

자연을 거스르는 디자인, 결국 인간을 위협한다

이처럼 생태주의적 디자인은 자연과의 조화와 공존을 생각하는 디자인이다. 그리고 결국 그 디자인은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단순하고 명료한 이치를 아직도 거스른 일이 잦다.

더 편리하길 바라거나 더 많이 갖기를 바라며 자연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나일강의 아스완댐이다. 매년 발생하는 홍수로 인해 농사에 피해를 입어오던 이집트 정부는 강의 범람을 막아 1년 내내 농사를 짓기 위해 아스완댐을 건설했다. 완공된 아스완댐은 홍수를 막아줄 뿐만 아니라 막대한 전력을 생산하며 산업화를 이끌었다. 정부와 국민들은 아스완 댐이 완벽한 디자인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잠시뿐이었다. 농작물에서 과거에 없었던 병충해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 빅토리아 호 열대우림에서 발생해 수단, 에티오피아를 거쳐 풍부한 영양소를 가져와 나일강에서 범람하며 영양분을 보급하던 이집트의 땅은 영양분을 잃었고, 병충해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농가들은 하는 수없이 화학비료를 활용했고, 수질과 토양오염을 야기했다. 또한 댐은 농작물에 냉해피해를 입혔고, 생태계 파괴, 동물전염병, 수인성전염병 등을 유발했다. 생태주의가 결여된 디자인이 낳은 참사였다.

이러한 사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더 많은 경작지를 얻기 위해 열대우림을 불태우고 있으며, 더 가격이 비싼 작물을 심기 위해 다른 작물들은 멸종시키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늪지를 가치 없는 땅이라고 매웠고, 갯벌을 매워 새로운 땅을 만들었다. 물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통제하고, 강의 깊이를 통해 더 많은 물을 축적하려 했다.

자연을 거스른 디자인들은 결국 우리에게 피해로 다가왔다. 늪지가 사라지며 생물다양성을 잃었고, 무리한 간척사업으로 수질오염을 초래했다. 4대강 사업은 이미 실패로 결론을 내렸고, 복구작업에 돌입했다.

이처럼 생태주의 디자인이 결여된 정책과 사업은 우리에게 수많은 교훈을 남기고 있다. 인간의 이로움만이 아니라 자연이 받는 영향을 얼마나 최소화 할 것인지, 기존의 자연과 얼마나 조화를 이룰 것인지를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정책과 사업은 자연과 생태계를 파괴하고, 그 결과물은 우리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그리고 무너진 자연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시간과 재원이 투자된다.

훈데르트바서는 “지구의 주인이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라고 말했다. 생태주의 디자인은 이 말에서 시작된다. 인간의 이로움 아닌 자연을 생각하고, 빌려 쓰는 만큼 되돌려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러한 생태주의 디자인은 결국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임호동 기자  ihd33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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