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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에 대한 윤리적 가치 실현하는 생태영성
  • 박희정 기자
  • 승인 2019.12.02 10:59
  • 호수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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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을 드러내고 시대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인간의 역사는 많은 영역에서 방법을 찾고 발전시켜왔다. 문화예술에서 찾기도 하고, 산업이나 기술에서 찾기도 했으며, 또한 고대부터 인간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종교에서 풀어보기 위한 노력들도 있어왔다. 생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생태적영성에 기대를 거는 것은 인간사회에서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사람과 자연생태계 전체를 건강하게 되살리기 위해 제 역할을 모색하는 생태영성에 대해 알아본다.

 

종교를 통해 되살리는 생태적 감수성

제대로 된 종교 가운데 파괴적인 종교는 없다. 종교의 가르침 중 가장 핵심을 이루는 것 가운데 하나가 자연생태계를 소중히 여기라는 생태적 감수성이다. 오늘날 종교의 힘은 다분히 약해져 있지만, 생태감수성을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인식과 삶에 스며들게 할 수 있는 그만한 힘을 가진 것도 찾기는 쉽지 않다.

각 종교마다 오늘날 생태위기의 원인과 그 해법에 대해 비슷하지만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다. 일테면, 기독교의 경우, 현대인이 살아가는 창조세계는 인간의 탐욕과 욕망으로 파괴되고 있다고 보고, 이 창조세계를 회복하기 위해 자신의 삶의 자리를 성찰하고 창조세계의 온전함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불교는 마음이 청정하면 산하대지가 청정하다고 보고, 이 때문에 자연환경의 위기는 곧 불교정신의 위기이며, 따라서 인간의 의식을 바로 세우는 것이 자연환경을 회복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천주교는 환경파괴의 근본원인을 인간의 오만과 탐욕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창조질서 회복을 위해서는 오만과 탐욕을 버리는 생태적 회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한다.

이처럼 종교는 다르지만 일관되게 드러나는 점은 지금의 생태적 위기의 원인을 인간의 탐욕, 내재된 욕망에서 찾고 있고,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하는 것이 자연에 대한 유기체적인 시각을 갖도록 하는 데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만물은 서로 연결돼 있으며, 서로 돕는다는 인식의 전제를 중요한 생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생태공동체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생태공동체주의의 범위는 다소 포괄적인데, 이 안에는 유토피아적 사고, 아나키스트적 사고, 인간과 자연의 공동체적 연대, 더 정확하게는 생태계에 인간사회를 적응시키는 것을 진보로 이해하는 사고들이 모두 포함된다. 사회학자 로버트 니스벳에 의하면, 생태공동체주의는 인간과 땅이 긴밀하게 연계돼 있듯이 모든 존재들 간의 긴밀한 연결과 조화로운 균형을 강조하며, 인간은 이 거룩한 질서의 일부분으로 이해된다.

문제는 인간사회가 이러한 생태감수성을 많은 부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상업혁명에 따라 사회 전체의 필요와 목적이 변해 자연에 대한 유기체적 시각과 가치를 유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자본이 축적되자 사람들은 더 많은 상품을 구매하고 싶어 했고, 자본가들은 노동자와 자연을 착취하고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해내기 시작한 것이다.

 

잃어버린 생태감수성

티베트의 최고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오늘날의 종교의 역할에 대해 묻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창조질서의 보전을 위해 함께 일하는 종교만이 오늘날 종교라는 명칭을 온전히 달고 다닐 수 있습니다”라고. 생태위기의 시대에는 생태적 종교만이 치유의 종교가 될 수 있으며, 사람과 자연생태계 전체를 건강하게 되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생태공동체주의는 현대공업사회에 만연한 단절적이고 물질 지향적인 세계관을 비판하며, 이러한 세계관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영적 차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단순한 시각의 교정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영성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그 대안이 바로 생태적 영성이다. 생태적 영성은 생태적 각성을 촉구하는 것이며, 각성의 핵심은 우주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 우주에 대해 전체론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태적 영성은 내면의 성숙을 전제로 한다. 유독한 화학물질이나 핵폐기물을 바다에 버리거나 땅에 묻으면 폐기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의 여러 경로를 통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쓰레기를 제거했다는 환상을 갖고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성숙한 사고를 통해 생태계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지고자 하는 것이 생태적 영성의 발현이다.

생태적 영성을 중시하면서 이를 신학적으로 체계화한 것이 해방 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의 생태신학이다. 성령이 모든 곳에 존재한다는 사고에 주목한 보프는 영적혁명을 위한 신학적 근거로 ‘만유재신론’을 복원하고자 했다. 만유재신론은 모든 것이 신이라고 하는 범신론과 달리 하느님과 피조물이 항상 밀접하게 관련돼 있으나 동시에 서로 구별된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모든 것이 신이 아니라 모든 것 안에 신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모든 것 속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고 보는 만유재신론의 사고는 땅을 어머니로, 들소를 형제로 생각하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세계관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들은 사물을 대상화하지 않고 그 안에 존재하는 신성에 주목함으로써 사물들과의 조화로운 공존을 모색했다.

 

인간중심적 가치관을 내재한 중세의 우주론

이러한 신학적 생태주의는 중세의 우주론에서부터 시작된다. 중세의 우주론에서 중요한 것이 ‘존재의 사슬’이라는 개념이다. 데이비드 페퍼에 따르면 이것은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원소는 살아 있거나 죽었거나 정신적이거나 물질적이거나 모두 이 거대한 사슬 속에 서로 맞물려 있다”는 인식이다. 불교의 연기론적 세계관과 다분히 유사한 이 개념은 중세의 우주론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대단히 밀접하게 상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개념 속에는 신이 인간을 위해 자연을 창조했기 때문에 자연으로부터 인간이 이익을 얻어야 한다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과, 자연과 인간의 조화롭고 유기적인 관계를 강조하는 사고방식이 동시에 존재한다. 즉, 인간과 자연의 지위를 어떻게 취급하느냐에 따라 상이한 의견으로 나뉘는 것이다. 중세는 신학의 시대였기 때문에 이러한 논쟁은 결국 기독교가 인간의 자연지배 혹은 더 나아가서 자연개발을 정당화하는 종교인가 아니면 인간을 자연의 보호자로 설정함으로써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종교인가에 대한 논쟁으로도 이어졌다.

문제는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이 두 가지 이데올로기 가운데 인간을 자연의 지배자로 보는 관점이 지배 이데올로기가 됐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이 자연의 원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고, 단순히 신의 의도를 밝히는 것을 넘어서서, 그러한 신앙의 권위를 뒤집어엎는 패러다임을 만들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어떤 문명이 인식의 한계점에 도달하게 되면, 사람들은 지식과 믿음의 균형을 잃고, 입증되지 않은 믿음에 의지하게 된다. 따라서 근본적 해결책을 찾으려면 지식과 믿음의 균형을 되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존의 지식에 대한 과도한 집착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지만, 기존의 지식이 복잡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고 해서 검증되지 않은 믿음에 과도하게 매달리는 것 역시 개인이나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과 믿음의 균형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참고도서
<생태주의> 이상헌

박희정 기자  doban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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