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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패러다임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 생태주의
  • 박희정 기자
  • 승인 2019.12.02 10:59
  • 호수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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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는 질서라는 것이 있다. 인간의 언어로 인간의 가치체계로는 설명될 수 없는 질서 속에서 지구생태계는 조화돼 이뤄져 있고 그 속에서 생명이 움트고 살아간다. 양육강식의 생존경쟁을 보며 안타까워 할 필요가 없는 것이 그 자체가 생태계를 이루는 질서이고, 그러한 먹이경쟁에서 생태계는 균형을 유지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생태질서를 깨고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는 생명체는 인간뿐이다. 그리고 한 번 무너진 질서는 결국 어딘가에 탈을 내고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쓰나미를 목도하면서 알게 됐다. 생태질서를 유지하는 것, 생태가치를 삶의 태도로 여기는 생태주의에 시선을 돌려야 하는 이유다.

 

자연의 한계, 생태위기에 대한 반성

생태주의는 인간중심주의와 현대적 진보 패러다임에 대한 근본적 문제 제기다. 과학혁명의 기계적 세계관과 자본주의 속성이 맞물려 인간의 자연 지배가 시대정신이자 합리적 진보의 기준이 됐고, 이에 따라 더 많은 개발, 더 많은 생산과 소비, 이로 인한 환경오염의 증가가 인류의 진보를 증명하는 징표가 됐다. 생태주의의 개념과 역사를 다루는 저서 <생태주의>는 자유주의, 보수주의,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 파시즘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현대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이념지형에 상관없이 자연지배에 근거한 공업화와 개발 지향적인 진보의 개념을 공유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현대적 진보는 생태계 파괴와 교란, 천연자원 고갈, 생물종 다양성 파괴, 열대우림 잠식과 사막화, 기후변화 등의 환경위기를 불러왔고, 이에 대한 근본적 성찰의 방식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생태주의라는 것이다.

자연의 한계, 생태위기의 원인과 극복 방안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다는 점에서 생태주의는 과학기술과 진보로 대표되는 현대의 패러다임에 대한 저항을 담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가 친생태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현 사회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의 성격을 띤다. 또한 기후변화 등 기존의 사고방식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문제들과 대결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인식체계를 만들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데, 자연과 인간사회의 관계 회복을 성찰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가장 급진적인 이념이 바로 생태주의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생태주의적 관점

생태주의적 관점은 다양한 경로로 확장되고 발전돼오면서 한 가지로 규명하는 것이 어렵지만, 그 발달의 과정과 주요 특징을 통해서 구분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생태주의는 전통적인 환경주의보다 더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방법으로 환경문제를 바라보는 사상이다. 즉 현재의 환경문제를 기술적 전문성의 적용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며 사회의 근본적 성격이 개선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환경주의와 달리, 이를 보다 심각하고 심층적인 잘못들이 겹쳐 일어난 문제로 보는 것이 생태주의다.

전통적 환경주의가 사회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여겼다면, 생태주의는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생태주의적 관점을 따른다면 환경문제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질서들의 문제가 겹치며 만들어낸 표면적 증상일 뿐이다. 따라서 환경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에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그간 생태주의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뤄져 왔는데, 크게 나누면 생태낭만주의와 생태합리주의의 두 가지 갈래로 분류할 수 있다.

생태낭만주의는 주로 자연과의 공동체적 관계, 인간의 필요와 권리를 자연의 다른 존재들에 비해 특권화하는 것에 대한 거부, 인간의 우월성에 대한 거부 등의 태도를 보인다. 생태낭만주의는 사회제도의 개선이나 변혁에 신경 쓰기보다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감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개인의 가치관 변화와 그에 따른 실천적 행보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환경문제의 근원적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여겼다. 가치관의 혁신이 지속된다면 문화패러다임의 교체가 형성되면서 환경위기가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생태합리주의는 합리적 이성이 가진 특권을 여전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성적 태도로 생태적 위기에 대응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생태합리주의는 낭만주의와 달리 계몽주의의 가치를 선택적으로 수용한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이므로 사회제도를 바르게 구축해야 하고, 그것은 인간의 이성에 의해 조성될 수 있다. 특히 도구적 이성을 넘어, 관계적 이성을 통해 동료 사회 구성원과 자연에 대해 호혜적으로 다가가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새로운 생태사회를 조성하는 것으로 환경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생태주의 이데올로기도 만능일 수는 없다

어떤 생태주의 이데올로기도 현재의 자본주의체제가 생태적인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등 모든 사회체제에는 문제가 있으며 그 문제의 본질적 원인은 인간의 자연 지배라고 생각하는 입장이 있고, 자본주의 시장을 성장과 환경파괴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하면 환경문제는 충분히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입장도 있다. 기존의 사회주의에는 한계가 있으나 역시 사회주의적 방식이 자연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더 보장해줄 것이라고 믿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 차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날 생태주의의 이데올로기가 대단히 복잡하고 위험하며 불확실한 문제들에 대해 해결책을 내놓아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과거의 어떤 생태주의적 이데올로기나 확고한 가치관에만 의지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이데올로기의 여러 가지 해결책들과 수단들이 동시에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문제에 적용 가능한 만능의 수단이란 있을 수 없으며, 어떤 이데올로기가 더 우월하다고 할 수도 없다. 물론 특정한 상황과 여건에서는 단기적으로 어떤 이데올로기의 현실 적합성과 장점이 구분될 수 있을 것이고, 때로는 반드시 특정 이데올로기가 유용한 경우도 있다. 예컨대 생태파시즘은 극히 제한적인 한에서 유용할 것으로 보는데, 생태위기의 원인 진단과 해법 선택에서 파시즘적 경향을 보이는 생태파시즘은 환경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인구 증가를 꼽은 결과 제3세계나 극빈국에 대해 폭력적이고 강제적인 방법으로 인구를 통제하는 결과를 낳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생태주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오늘날 전 세계는 지구의 생존과 문명의 존속을 위협하는 심각한 환경생태위기에 직면해 있다. 현재 인류가 직면한 가장 복잡하고 예상하기 어려우며, 우리 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것은 기후변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기후변화의 이슈는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생태주의 이데올로기를 대중적인 것으로 만들어놓기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전 지구적 환경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해보고, 기존의 자원 특히 화석에너지의 이용방식도 돌이켜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 화석에너지 사용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말은 곧 산업발전을 멈추고 편리한 생활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화석에너지 절약 자체가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더군다나 강대국들은 곧 바닥을 드러낼 석유 자원을 더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하고 있어 상황은 예전보다 더 심각하다. 저서 <생태주의>는 사람들이 생태주의자들의 주장에 귀 기울일 가능성은 여기에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생태주의나 생태이데올로기에 대한 학문적 배경이나 지식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념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생태주의는 그 발달과정에서 여러 갈래로 나뉘고 주된 관점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그렇지만 인간사회가 본래 자연의 질서로 회귀하고, 그 속에서 어우러져야 함은 공통된다. 인간 사회와 자연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답해가는, 기존 패러다임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했을 때 우리는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 하나의 대안적 가치체계로서 생태주의가 더 많이 논의되고 좋은 성찰의 재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도서
<생태주의> 이상헌

박희정 기자  doban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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