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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 삼절의 묵향에 취하다 / 자하 신위 탄생 250주년 기념 서화전
  • 박희정 기자
  • 승인 2020.02.13 14:46
  • 호수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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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손으로 그리지만 시작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옛말을 빌리자면, 흉중성죽. 즉 대나무를 가슴 속에 품는 것이 표현하는 것보다 먼저라는 뜻이다. 내면의 심상을 말로 다듬어내면 시가 되고, 형태로 옮기면 그림이 된다. 시와 글씨와 그림이 하나 되는 조선의 화가 자하 신위는 19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시서화 삼절이었다. 그의 시는 특히 높이 평가돼 두보에 비견된다. 자하 신위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전시에서 시서화가 하나 된 고전의 가치를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신위, 황공망과 미불을 재해석한 그림, 조선 19세기 전반, 종이에 먹
신위, 대나무, 조선 19세기 전반, 종이에 먹

시서화가 하나 된 진정한 삼절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서화실에서는 자하 신위(1769~1847)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는 서화전 ‘자줏빛 노을에 물들다’가 열리고 있다. 신위는 시서화 삼절이자 조선시대 3대 묵죽화가로 이름 높지만, 그 삶과 예술의 깊이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시서화에 모두 뛰어난 인물을 삼절이라 하는데, 실상 세 가지를 모두 최고 수준으로 성취한 인물은 신위를 빼고 달리 찾기 어렵다고 한다. 조선후기 삼절로 꼽히는 강세황(1713~1791)과 김정희(1786~1856)도 시만큼은 신위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고. 생전에 이미 “두보의 시를 배우듯 신위의 시를 읽는다”고 할 정도로 신위는 대가로 인정받았고, 20세기에 들어서도 고전문학의 마지막 거장으로 추앙받았다. 신위의 시는 청신하고 회화성이 넘친다. 그의 글씨와 그림에도 이러한 시적 정취가 깃들었으니, 시서화가 혼연히 하나 된 진정한 삼절이라 할 수 있다.

신위는 추사 김정희와 돈독한 사이였는 데, 김정희는 고대 비석 연구를 토대로 독특한 서풍을 창출한 반면, 신위는 왕희지(303~361)를 모범으로 삼아 우아한 서풍을 연마해 서로 다른 개성을 보여줬다. 두 사람의 서예는 지향점은 다르지만 19세기 조선 문인이 다다른 최고의 경지를 보여준다.

 

신위, 신명준, 신명연 합작 시령도, 조선 1834년, 종이에 먹
신위, 윤정현을 위해 쓴 ‘침계’, 조선 19세기 전반, 종이에 먹

왜 다시 자하인가

“한 번 태어나서 기재를 갖추고 한 시대의 극변을 다해서 쇠퇴한 시대에 훨훨 날아오른 대가”라며, 자하 신위를 평한 김택영의 표현은, 신위에 대한 19세기 사람들의 존경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한문과 서화의 시대가 저물고 개성과 천재를 칭송하는 시대가 열리자, 신위는 점차 잊혀졌다. 삼절을 논할 때에도 투철한 자의식으로 자화상을 그린 강세황, 독보적인 개성을 발휘한 김정희 사이에서 희미하게 여겨지게 됐다. 그렇다면 지금 다시 그를 돌보아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날 생활과 업적은 분리돼 있다. 가정과 직장, 인품과 공적을 마치 별개처럼 여긴다. 한 인물의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은 물론 분리하는 것이 객관적이겠지만, 지나치게 파편화된 삶에서는 방향을 잃기 쉽다. 많은 명사들이 화려한 명성 뒤에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언어의 정수인 시는 조형적 표현인 글씨나 그림과는 다른 영역이다. 시어의 진실함은 작가의 인생관과 깊이 결부된다는 점에서, 신위의 예술은 진실한 삶과 여기에서 비롯된 시가 관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신위가 승정원 승지로 근무할 때 재상들 사이에서 그림을 감히 부탁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하급 서리에게 “내가 어찌 너에게만 인색하게 굴 것인가?”라고 웃으며 그 자리에서 대나무를 그려줬다는 일화는 신위의 사람됨을 잘 보여준다. 신위의 담백한 붓질과 그가 읊은 시는 신위의 인품과 다르지 않았다. 신위의 예술은 오늘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삶과 하나 된 예술을 펼친 신위를 다시 이 시대에 불러온 이유다.

 

삶과 예술이 하나 된 고전의 가치

신위는 특히 꽃을 사랑했다고 한다. 누구나 아름답다 여기는 모란과 매화 같은 꽃나무만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잘 모르거나 거들떠보지 않았던 식물도 기꺼이 마당에 끌어들여 섬세하게 가꿨다. 청나라 연행에서 가지고 온 수선화, 춘천부사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올 때 옮겨 심은 자등화와 같이 희귀한 꽃에서 시작해 잡초 취급을 받았던 여뀌와 갈대까지도 어울리는 위치에 나눠 심었다. 자하 신위의 서화 가풍은 맏아들 신명준과 둘째 아들 신명연으로 계승됐는데, 특히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도와 꽃을 가꾼 신명연이 조선을 대표하는 화조화가로 자라난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신위는 무엇보다 변치 않는 고전의 정수를 탐구했다. 그에게 고전의 가치는 옛 문인들이 올곧게 지켜낸 정신이었다. “소식을 탐구해 두보의 경지에 들어간다(由蘇入杜)”라는 그의 예술론은 동아시아의 고전적 황금기를 이 땅에서 이룩하려는 노력의 산물이었다. 그는 지방관으로 재직할 때 파직을 무릅쓰고 백성을 위해 토호의 횡포에 맞섰다. 단아한 그의 글씨와 그림은 역설적으로 치열한 삶 속에서 피워낸 것이었다.

우리 모두는 자기 인생의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간다. 마음의 이미지에 따라 손끝 붓끝이 따라가는 법이다. 그리고 여기 신위의 서화가 있다. 그를 감상하며 그가 평생 다가가려 했던 이상적 인간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기회다. 신위의 인간적 면모와 고전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이번 전시에서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자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시길 권한다.

 

자하 신위 탄생 250주년 기념 서화전

o기 간 : 2020년 3월 8일(일)까지
o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서화실
o 전시품 : <묵죽도> 등 25건 85점

박희정 기자  doban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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