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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환경교육
  • 박희정 기자
  • 승인 2021.02.10 10:45
  • 호수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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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공교육이 무너진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 됐지만 지난해와 같이 교육시스템 전체가 중단된 것은 일찍이 유례가 없었다. 코로나 확산이 눈에 띄게 불어난 시점과 개학시기가 맞물리면서 정부당국과 학부모, 학생들은 박탈된 교육의 기회에 아연 자실해야 했다. 백년지대계인 교육이 외부조건에 의해서 중단된 것은 이해할 수는 일는 일이다. 문제는 정작 필요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아 학생들이 나서서 학습권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교육

환경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게 된 시작은 1972년 로마클럽이 낸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에서 찾을 수 있다. 현재의 경제성장 방법과 추세가 변하지 않는 한 100년 후 인류의 성장은 한계에 도달할 것이라고 보고서는 경고했는데, 이를 계기로 국제기구 등에서 환경문제의 심각성이 논의됐고 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되게 된 것이다.

환경문제의 해법은 기술개발과 법, 제도의 개선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 근본이 되는 것은 교육을 통해서다. 사람의 생각이 바뀌어야 환경을 위한 기술과 제도를 선택할 수 있고, 실제 행동을 통해서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녹색산업, 녹색성장 등을 기치로 산업기술이, 또는 국가정책이 지금의 환경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며 경제성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경제성장을 동반하면서 환경문제도 해결할 것이라는 오만은 이제 설 자리를 잃었다. 누가 봐도 지금의 환경문제는 지구촌이 당면한 가장 심각한 도전과제이며, 국가가 정책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기술 또한 지금의 환경오염의 심각함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결국 근본으로 돌아가서 사람이 바뀌고 생활방식이 바뀌어야 개선될 수 있는 현실인 것이다.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삶을 이끄는 가장 확실한 해법은 환경교육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환경교육을 위시한 거의 모든 공교육이 추락한 지금의 상황이다.

 

학생들이 나서서 환경학습권 보장 요구해

박탈된 교육의 기회는 단지 교육시스템의 공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 세계 청소년들이 기후위기를 걱정하고 분노하고 있는 현실은 코로나 이전부터 계속돼왔다. 이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어른세대가 고갈시키고 파괴한 자연의 대가를 미래를 살아갈 자신들이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의 시대를 떠안은 이들 청소년들은 거리로 나왔다.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유엔총회에 모인 각국 정상들 앞에서 “모든 미래세대의 눈이 당신들에게 향하고 있다. 당신들이 우리를 실망시킨다면 우리는 결코 당신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울먹이며 경고했고, 세계 청소년들이 각지에서 결석시위에 동참하며 가속을 내고 있는 기후재앙과 환경의 변화를 막아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분노는 단순히 현안의 해결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현실성 있는 교육을 학교에서 받게 해달라는 것이다. “미래가 없는데 학교에 가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는 툰베리는 말처럼,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해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교육을 시켜달라는 것이 청소년들의 또 다른 요구이다.

실제 지난해 2월에는 영국의 청소년들이 국회의사당을 찾아가 ‘우리 청소년들은 우리가 맞닥뜨릴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며 교육정책을 개혁해달라고 강하게 요청했다. 과학시간에 기후위기의 원인을 배우는 것만으로 결코 미래를 살아갈 수 없고, 한정된 자원을 고갈시키는 오늘날의 경제관으로는 점점 사라져가는 자원과 이로 인한 전쟁과 파국을 피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였다.

기후변화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국내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정부당국에 강화된 기후정책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제한된 환경교육의 범위를 넓히고 실질적으로 환경문제를 들여다보고 해법을 모색할 수 있는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해달라는 것이 청소년들의 기후행동 가운데 하나다.

 

서서히 끓어오르지만 임계점 다다랐을 때는 늦어

기후위기는 서서히 일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의 주의를 잃기 쉽다. 조금씩 물이 끓어오르는 냄비 속에서 개구리가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기후위기의 영향으로 고통 받는 전 세계의 거대한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우리나라는 2050년 탄소중립 선언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 대응 성적은 여전히 최하위권을 면치 못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낮은 재생에너지 비중과 소극적인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는 지구온도 상승을 1.5°C 이내로 억제하기로 한 파리협정 목표를 달성하는 데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코로나19는 지난 한 해를 가로지르며 일상생활뿐 아니라 산업구조에서 모든 가치체계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질서를 강제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녹색전환, 그린 뉴딜 등의 용어들이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그러나 변화를 추동해야 할 우리의 대응은 소극적이다. 기후변화대응지수의 참담한 성적표가 이를 대변하고 있다. 그래서 환경학습권 보장 등 환경교육에 대한 요구들이 분출하고 있고, 환경교육비상선언에까지 이르게 됐다. 이렇듯 환경교육의 현실은 우리에게 무겁게 다가오고 있는 중이다.

또한 환경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 내 삶과 가까이에서 이뤄지는 환경교육이야말로 자기환경화, 즉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환경에 대한 문제를 개인에게 의미 있는 자기환경으로 받아들여 관심 있는 태도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이다.

 

환경교육의 대전환 이룰 기로

미래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하고 안전한 삶을 준비하기 위해 지금 우리는 우리의 교육을 대전환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 기후위기 시대에 학생들의 환경학습권을 보장하고, 학교와 마을을 넘어서, 지역에서 함께 미래세대의 건강권을 지켜줘야 한다. 학교 온실가스 감축 방안도 고민하고 지구라는 공동체의 시민으로서 생태시민 교육도 가능해야 한다.

최근 기후위기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기후변화와 환경 파괴로 인해 발생한 질병이 생각보다 사람들에게 커다란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도 여러 차례 팬데믹, 또는 종류는 다르지만 그 FEBRUARY여파는 다르지 않을 대규모 충격을 겪을 수 있다. 이번보다 훨씬 더 심각한 비극이 우리를 덮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 경제는 붕괴될 것이고, 우리가 누리던 자유와 우리가 이룩한 문명도 함께 스러질 것이다. 그러니 그런 일을 미리 예상하고 이에 대비해야 하며 이는 단순한 예측 이상이어야 한다. 무엇이 친환경적인 생활양식인지 잘 알면서도 일상의 관성에 떠밀려 실천에 옮기지 못하며, 기후위기의 주범이기도 한 현재의 정치경제 시스템에 항의하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 보다 생태적이고 정의롭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청소년들이 나서서 지구를 살리고 우리 스스로를 살리는 변화를 일궈가고 있는 현실이다. 교육계에서는 단순히 학교에서 국영수처럼 환경을 가르치기보다는 범교과적으로 환경을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크고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사는 집을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이러한 잘못을 범하지 않고 바로 잡기 위한 작업을 교육을 통해 시작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 모두를 구할 마지막 희망이다.

박희정 기자  doban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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